[박정훈, "‘게이트’의 악취가 하도 진동해 덮을 방법이 없다," 조선일보, 2020. 10. 23, A34쪽.]


권력과 돈은 남녀 관계와도 같다. 부도덕한 정치가 바람난 돈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정권마다 ‘게이트’로 불리는 불륜극이 끊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한보 게이트’, 김대중 정부는 ‘3대 게이트’로 대통령 아들까지 줄줄이 엮이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영포 게이트’를 겪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져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최순실 게이트’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느 정권도 게이트의 비극을 피해갈 만큼 절제심이 강하지 못했다.


그리고 문 정부가 들어섰다. 임기 절반을 돌 무렵 경제 관료 출신의 친문 인사 Y씨가 수뢰 혐의로 구속됐다. 문 정권의 도덕성을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는 말이 당시 돌았다. 금융 전문가인 Y씨는 문대통령을 ‘형’이라 부를 정도로 친문들과 막역했다. 실세들이 구명 운동을 벌일 만큼 서열도 높았다. 한마디로 권력과 돈의 중개자 역할을 할 적임자였다. 만약 게이트가 터진다면 연결 고리는 그일 것이란 말이 무성했었다. 그런 인물이 축출됐으니 게이트의 잠재적 싹이 잘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폭탄이 있었다. 희대의 사모펀드 사기극 두 건이 연달아 터지고 말았다. 펀드 사태는 DJ 정부의 ‘3대 게이트’와 여러모로 유사했다. 금융 사기라는 구조부터 판박이였다. 20년 전 ‘진승현·이용호·정현준 게이트’는 전형적인 금융·주식 게이트였다. 신용금고 대출과 전환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불법 조성해 주가조작 등에 굴렸다. 이번에도 사기꾼들은 은행·증권사를 통해 판매한 펀드 자금을 빼돌린 뒤 기업투자·인수 등에 썼다. 대출이냐, 펀드냐의 차이뿐이었다.


특정 지역과 학교 인맥으로 얽힌 것도 공통적이었다. ‘3대 게이트’의 주축이 호남·K대 출신이었다면, 펀드 사태는 호남과 H대 인맥이 뼈대를 이뤘다. ‘3대 게이트’는 대통령 아들과 권력 실세, 국정원·금감원·국세청 등이 전방위로 엮인 정·관·업(政官業) 복합 스캔들이었다. 이번에도 정치권과 청와대·금감원 등이 광범위하게 연루됐다는 혐의가 쏟아지고 있다. 20년 전 권력 게이트와 놀랄 만큼 유사한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펀드 사태는 결코 단순 사기일 수 없다. 금융 논리와 자본시장 시스템상으론 그런 사기극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조6000억원을 날린 라임펀드의 부도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금감원은 미온적 조사로 미적거리면서 사기꾼들이 로비하고 도피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7개월이나 끌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뒤에야 검찰에 고발했다. 금감원 검사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전주(錢主)는 190억원을 빼돌려 도주할 수 있었다.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5000억원이 구멍난 옵티머스펀드는 상품 설계 자체가 허구였다. 펀드가 투자 대상으로 내건 ‘공공기관 매출 채권’이란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엉터리임을 알 수 있지만 놀랍게도 그 까다롭다는 은행·증권사의 심사 절차를 손쉽게 통과하는 기적이 벌어졌다. 농협 계열 증권사는 펀드 측 제안을 받고 불과 사흘 만에 판매를 결정했다. 펀드 설립자는 검찰의 출국 금지 하루 전날 외국으로 튀고, 대통령 해외 행사에 얼굴까지 내밀었다. 이게 ‘빽’ 없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정·관계 인사들 이름이 줄줄이 튀어 나오고 있다.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5000만원 수수설이 불거졌고, 민주당 중진 의원, 여권의 대선 주자, 전·현직 검사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직 부총리와 검찰총장은 사기펀드의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범 중 하나는 문재인 대선 캠프의 특보 출신이었고, 그의 아내는 펀드 지분을 보유한 채 청와대에서 근무 중이었다. 주범과 동향인 청와대 행정관은 금감원의 검사 정보를 사기단에 실시간 전달해주고 있었다. 주범이 “민정실도, 금감원도 다 내 사람”이라며 큰소리치고 다닐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냄새가 진동하는 사건은 본 적이 없다. ‘게이트’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단 하나 과거 게이트들과 다른 것은 정권의 뻔뻔함뿐이다. 권력 비호를 시사하는 온갖 정황이 쏟아지는데도 미안해 하는 기색조차 없다. 1년 가까이 쉬쉬하며 수사를 질질 끌더니 사기꾼 입에서 야당과 검사 이름이 나오자 반색하며 ‘윤석열 내쫓기’의 뒤집기 기술에 들어갔다. 검찰마저 정권의 충견(忠犬)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겁날 것도 없을 것이다. 울산 선거 개입이나 추미애 아들 의혹처럼 적당히 꼬리 자르고 덮을 수 있다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정권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권력과 돈의 부도덕한 동거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게이트’의 악취가 하도 진동해 아무리 덮어도 감출 방법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