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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화 초래한 평화협정

2007.10.10 13:30

관리자 조회 수:978 추천:98

[김정은, “2년 만에 월남 공산화 초래한 1973년 베트남 평화협정,” 미래한국, 2007. 9. 8, 5쪽; 홍규덕, “베트남전쟁과 한국․베트남․미국 외교관계” 참고.]


1973년 1월 23일, 파리시간으로 12시 30분에 전쟁 종식과 베트남에서의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이 미국 측 헨리 키신저와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특별고문 르덕토에 의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세계에 전해졌다. 이 협정은 1월 27일, 베트남 파리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조인되었다.


닉슨 美 대통령은 23일 베트남전쟁 종결 선언을 하며 “명예로운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명예로운 협정을 맺은 만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면서 “우리는 동맹국들을 배반하는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으며, 우리는 전쟁포로를 희생하여 평화를 획득한 것도 아니다. 또한 인도차이나의 5천만 국민을 전쟁에 방기한 채 우리만이 전쟁을 끝맺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973년 평화협정 이후의 베트남 상황은 닉슨의 발언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 베트남이 무너지고 베트남이 완전히 공산화 되는 데에는 불과 2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존슨 대통령은 월 20억 달러가 넘는 전비를 지출하면서도 전황이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당시 20만 명의 추가병력을 요구하던 웨스트모얼랜드 주월 사령관을 본국으로 송환하고, 그 동안 공세정책을 주도하던 맥나마라 국방장관도 경질하고 만다. 결국 1968년 3월 31일 존슨은 DMZ를 제외한 지역에 대한 폭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1968년 대선에 불참할 것을 발표했다. 아울러 그는 에버렐 해리만을 대표로 지명하여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노이 당국과 평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968년 5월 13일 파리협상의 첫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쉽게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했다. 핵심은 남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라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킬것을 요구하는 반전여론을 의식한 후임 닉슨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아시아는 아시아의 손에 맡긴다는 정책으로 급선회하여 철군을 시도했다.


물론 남 베트남의 티우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적인 철수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1973년 1월 27일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닉슨은 1954년 프랑스가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시작된 인도차이나 개입의 멍에를 20여년만에 벗어던질 수 있었다.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는 “결과적으로 베트남 평화협정은 미국의 철군명분을 충족시켜 준 반면 결코 평화가 지켜질 수 없는 내용들로 구성된 미완의 협약이었다”고 지적한다.


닉슨은 하노인 당국이 협약을 위반할 경우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티우를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그의 영향력은 사라져갔고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 역시 베트남에 다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1974년 가을까지 군사적 균형은 이미 북 베트남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북 베트남과 임시혁명정부는 이미 많은 병력을 동원했고 보급품을 축적하면서 결정적 타격을 가할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반면 남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점차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미군철수와 함께 경기는 위축되었고, 미국의 원조삭감과 90퍼센트가 넘는 인플레로 실업이 속출하고 군의 사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 같은 사기저하는 1974년 한해 동안 24만명의 정부군이 탈영을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회를 기다리던 북 베트남은 1975년 본격적인 공세를 감행했고, 불과 55일 만에 사이공 정부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얻어냈다.


사이공 함락 후 남 베트남의 지도층 인사, 공무원, 지식인들은 수용소에 보내졌다. 심지어 북 베트남을 도와 사이공 정권 반대운동을 벌였던 인사들도 대부분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작은 보트를 이용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국민들의 숫자는 약 106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11만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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