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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가 통치하는 나라

2006.05.16 10:55

관리자 조회 수:1041 추천:154

[이두아, “위원회가 통치하는 나라,” 조선일보, 2006. 4. 27, A34쪽.]

“법은 이성에 기초하는 것이고, 나와 내 신하들도 판사들만큼 이성을 갖고 있소.”

17세기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는 모든 판사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왕이 원한다면 웨스트민스터홀에 앉아서 어떤 법원의 어떤 사건도 판사가 아닌 어떤 신하를 통해서라도 재판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법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드워드 코크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폐하는 영국의 법과 신민들의 생명, 재산에 관계되는 권리 주장에 관하여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 주장들은 자연적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적 이성을 오랫동안 훈련한 법관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신민들의 법적 주장에 답하는 황금의 마법지팡이입니다. ”

그렇다. 법률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무는 옳고 그름을 가려 억울한 사람, 억울한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기초공사를 하지 않고, 2층집부터 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떤 법률을 적용하여 판결을 내릴 것인가를 정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최근 대한민국 법원은 몇몇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인정했다. 이것은 보기보다 심각한 문제다. 법률가는 감정, 이념, 역사관, 정치색, 기타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어떤 인물이나 기관이 작성한 것이든 그 보고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주관적인 견해, 즉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판결의 근거로 작용할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사법권의 중요한 역할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재판정 밖에서도 사태는 심각하다. 21세기 초엽의 대한민국에서는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설치 근거가 없는 각종 위원회들이 헌법과 국민생활 속으로 마구 침투하며 ‘자기들만의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위원회 통치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권력의 제도화’라는 입헌주의 헌정(憲政)의 기본 질서를 흔들면서 대통령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권력의 사유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사법제도의 근간을 손보고, 동북아시대위원회는 헌법과 정부조직법상의 국가운영 시스템을 무시하고 행담도 개발사업을 지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해군 작전시설의 건설공사 중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국장급 공무원 인사교류 등을 자체적으로 발표한다. 이 정책들의 소관부서이자 국민들의 위임을 받은 공식기구인 법무부, 외교부, 건설교통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산업자원부는 위원회들이 발표한 정책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기관으로 변질됐다. 헌법상 삼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까지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와중에 대통령 직속인 각종 위원회들은 감사원 정기 감사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대통령이 의장이 되는 국무회의에서의 토론과 표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위원회라는 비헌법적 기관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통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두 기관의 소명의식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두 기관이나 사법부가 의식을 못하는 사이에, 과거사와 관련하여 수사권이라는 마법의 황금지팡이는 어느새 각종 위원회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다.

코크는 사법부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제임스 1세에게 “국왕은 사람들 아래에 있지는 않지만 신과 법 아래에 있다”고 항변하였다. 이 시대에도 ‘대통령과 대통령의 위원회들은 사람들 아래에 있지는 않지만 법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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