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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좌 목사의 6·25 증언

2007.08.14 11:00

관리자 조회 수:991 추천:80

[김정화, “6·25를 경험한 김형좌 목사의 증언,” 미래한국, 2007. 6. 23, 12쪽.]    
전라북도 시골교회에 다니던 김형좌 목사(77)는 교인이 교인을 참소해 죽였던 인민재판을 잊을 수 없다. 단란했던 교회 성도들은 인민군이 내려오면서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됐다. 먼저, 주일학교를 맡은 강 선생은 거짓증인으로 교인들을 고소해 인민재판의 희생제물로 보냈다. 그는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조작했다. 사진 밑에 써 있는 ‘청년면려회’라는 글자를 ‘공산당멸사회’라는 글자로 바꾸었다.
당시 ‘청년면려회’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앤더슨이 창시한 모임으로 헌신예배와 금주, 금연 등의 절제운동을 주도했다. 경북 안동교회에서 창설된 ‘청년면려회’는 각 교회에서 조직·결성하게 되면서 전국에 확산된 모임이었다. 그런데 주일학교 강 선생이 새긴 ‘공산당멸사회’는 말 그대로 공산당을 죽이는 단체를 뜻한다. 사진을 왜곡시킨 그는 사진을 들고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됐다.
몇 명의 선동으로 마을 주민까지 가담해 교인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가족처럼 살던 마을 주민과 몇몇 교인들에 의해 서로를 고발하고 죽이는 인민재판이 열린 것이다. 당시에 순교한 사람으로는 교회의 정 장로와 김형배 집사(김형좌 목사 형), 하치호 선생, 권태술 학생회장, 담임목사의 동생인 김성두 씨 등의 5명이 죽임을 당했다. 형이 현역 중령이었던 권태술 학생회장은 마을 사람들의 핍박으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려 했다. 권태술 학생회장이 거의 죽어갈 즈음에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죽어가는 권태술 학생회장을 밧줄로 묶은 후 끌고 가는 잔인함을 보였다.
교회 정 장로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서 끌고 나가더니 담 너머로 부인과 어린 자녀가 듣고 있는데 몽둥이로 때렸다. 그의 부인은 죽어가는 남편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형인 김형배 집사는 ‘대동청년단’의 간부였기 때문에 부산으로 도망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향에 돌아왔는데, 교인의 밀고로 붙잡혔다. 사람들은 그를 꼬챙이로 두 눈을 뺀 후 끌어갔다.
교인을 배반하고 선동했던 자들은 잡힌 교인들을 마을의 모래사장에서 생매장시켰다. 누명을 쓰고 잡힌 교인들은 밧줄로 온 몸이 꽁꽁 묶이고 두 눈이 붕대에 감긴 채 변명도 못하고 산 채로 모래에 묻혀야 한 것이다. 인민재판에 앞장선 교인은  2-4명 정도 된다. 그들 중에는 현재 회개하고 교회의 장로로 섬기는 사람도 있다. 사랑으로 하나 된 교회가 서로를 죽여야 했던 인민재판은 6·25전쟁이 교회에 가져다 준 큰 상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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