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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당신들이 200만 병력 대치한 대한민국 국회의원 맞나,” 조선일보, 2010. 6. 24, A35.]

국회 국방위원회는 23일 ‘북한의 천안함에 대한 군사도발 규탄 및 대응조치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명백한 침략행위이자 범죄행위’라고 규탄하면서 북한에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자 처벌, 배상,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결의안엔 마지막에 “천안함 사태에 모든 국민이 단합해 대처하도록 초당적(超黨的)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국회 스스로의 다짐도 들어 있다.

그러나 실제 이 결의안 처리 과정은 ‘초당적’이지 못했다. 민주당측은 “정부의 조사 결과를 둘러싸고 의혹이 있는 만큼 국회 결의안은 시기상조”라는 기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결의안이 만장일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 소속 원유철 국방위원장이 1시간여 토론을 끝낸 뒤 “결의안 처리에 이의 없느냐”고 묻곤 민주당측이 미처 이의를 제기할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 통과를 선포해 버렸기 때문이다. 국회는 28일쯤 본회의에서 이 결의안을 최종 처리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 부끄러운 반쪽짜리 결의안을 만들기까지 무려 89일을 허비했다. 세계 80여개국 정부, 국가지도자, 국제기구가 이미 북한의 천안함 폭침(爆沈)을 규탄한 후에야 대한민국 국회가 뒷북을 친 것이다.

국민이 이런 국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연 이 국회가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200만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이며, 이 국회가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과연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 제대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스러운 일이다.

세계의 역사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우선(優先)순위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당쟁(黨爭)에 휩쓸려 우왕좌왕(右往左往)했던 정부와 국회와 국민의 무덤이었다. 대한민국은 바로 60년 전 이런 실패의 길을 걷다 수백만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더 거슬러 400년 전으로 올라가면 적정(敵情) 보고조차 당파(黨派)에 따라 달리 만들어 이민족(異民族)의 칼날이 수십만 백성의 귀와 코를 잘라가도록 만든 치욕(恥辱)의 역사를 기록했다. 백성들은 쫓겨가는 그때의 지도층 등줄기를 향해 돌팔매를 던졌다.
이 나라 정치권은 지방선거에서 유․불리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데만 정신이 팔려 그 흔한 국회 결의안 한 장 내지 못했다. 우리 국민의 3분의 2는 6․25와 임진왜란을 떠올리며 그런 정치권을 향해 그때와 똑같이 마음의 돌팔매를 날리고 있다. 국민은 ‘당신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맞는가’ 하고 멱살을 잡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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