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사법 농단’ 100번째 재판," 조선일보, 2020. 10. 24, A30쪽.]


2차 대전 승전국들이 독일 뉘른베르크 법무부 건물에 재판소를 차려 전범 22명을 세웠다. 유명한 뉘른베르크 재판이다. 사건의 역사적 무게만큼 재판 규모도 방대했다. 1945년 11월부터 10개월여 동안 403차례나 재판을 열었고, 핵심 증거만 42권에 달했다. 유태인 학살 책임을 다룬 2차 재판까지 3년 넘게 이어졌다. 세기(世紀)의 재판이라 할 만하다.


▶유고 내전 문제도 1993년 재판소 창립 이래 재판이 계속된다. 9년여 재판 끝에 종신형 선고받은 카라지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 사건은 1심 증인만 586명, 법정에 제출된 증거는 1만1500건을 넘었다. 한국에서 파견된 권오곤 재판장이 판결문 요약본을 읽는 데만 1시간 30분 걸렸다고 한다. 또 다른 책임자 밀로셰비치는 재판 도중 옥사했다.


▶어제 한국판 세기의 재판이라는 ‘사법 농단’ 사건의 100번째 재판이 열렸다. 작년 2월부터 매주 2차례씩, 심야까지 마라톤 재판을 열었지만 심문을 마친 증인은 54명에 불과하다. 당초 계획한 200여명에서 추리고 뺀다고 해도 언제 재판이 끝날지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형사재판을 받는 것은 나체로 가시덤불에 내던져지는 일에 비유된다. 피고인들은 폐암 수술에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 피고인들이 재판받다 체력 한계를 호소하고 재판장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혐의 사실 47개, 공소장 300쪽, 사건 기록은 17만5000쪽(875㎏)에 이르는 검찰의 마구잡이 ‘트럭 기소’가 낳은 결과다. 재판이 아니라 고문이다.


▶게다가 이 재판은 도대체 왜 하는지 알 수도 없다. 피고인들 주요 혐의는 직권을 남용해 행정처 판사들에게 보고서를 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지시 증거도 명확하지 않거니와 설령 지시했다고 해도 업무 지시·보고가 어떻게 죄가 되나. 대법원에 보고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판사 6명이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이 무죄라면 지시한 쪽도 무죄일 수밖에 없다. 무죄가 뻔한 억지 재판을 벌써 100번이나 했고 앞으로도 더 한다고 한다.


▶이 황당한 사태는 “의혹을 밝히라”는 대통령 한마디로 시작됐다. 대법원장은 그 지시를 받아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검찰을 끌어들였다. 검사 50여 명이 총동원돼 5개월간 이 잡듯 털었다. ‘판사 블랙리스트’ ‘재판 거래’가 잘 나오지 않자 계속 수사를 확대했다. 그렇게 무리한 수사를 벌여 법관들을 쫓아낸 자리에 지금은 ‘재판이 곧 정치’라고 믿는 판사들이 앉아 있다. 법원을 정치로 뒤덮은 책임을 물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