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노정희(57) 대법관을 내정했다. 노 대법관은 최근 사퇴한 권순일 전 선관위원장(전 대법관)을 이어 차기 선관위원장을 맡게 된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관위원(9명) 중 호선(互選)으로 선출되는데, 대법관인 위원이 맡는 게 관례다. 노 대법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최초 여성 선관위원장이 된다. 임기 6년 동안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2022년 대선 및 지방선거, 2024년 총선까지 관리하게 된다.


대법원은 이날 “합리적이며 공정한 재판을 수행해 온 노 대법관은 선관위 직무도 훌륭하게 할 적임자”라고 발표했다. 노 대법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그가 선관위원장이 되면 5부 요인(要人) 가운데 법관들이 맡는 대법원장(우리법·인권법), 헌법재판소장(우리법), 선관위원장(우리법) 등 3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지게 된다. 국회의장, 국무총리는 정치인 출신이다.


노 대법관은 2018년 대법관이 된 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의 상고심 주심을 맡았다. 이후 주요 사건에서 선명한 진보 색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11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 ‘썩은 돌대가리’로 규정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주요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돼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의견(다수 의견)을 낸 6명 대법관 중 한 명이 노 대법관이었다. 또한 지난 7월 지방선거 TV 토론회에서 ‘친형 강제 입원’ 논란에 대해 “그런 일 없다”고 거짓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TV 토론회 공방 중에 한 말은 적극적 거짓말로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을 때도 다수 의견 쪽에 섰다. 이 판결은 ‘코드 재판’ 논란에 휘말렸다.


법조계에선 노무현 정권 때의 진보 대법관 5명을 뜻하는 ‘독수리 오형제’에 빗대 그를 문재인 정권의 ‘신(新)독수리 오형제’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한다. 노 대법관은 민주당 전해철 의원과는 사법연수원 동기(19기)로, 연수원 시절 전 의원과 같은 조(組)에서 활동해 친분이 깊다고 한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공정한 선거 관리를 책임지는 헌법 기관인 선관위는 중립성이 생명”이라며 “노 대법관의 선관위원장 지명은 이미 한쪽으로 쏠린 선관위 내부 구조와 맞물려 적지 않은 중립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선관위 상임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의 조해주 위원이다. 또 민주당은 최근 참여연대 소장 출신의 조성대 한신대 교수를 신임 선관위원 후보자로 추천했다. 조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시되자 소셜미디어에 “만세 만만세”라고 써 ‘정치 편향’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광주 출신의 노 대법관은 광주동신여고와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0년 춘천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을 역임했다. 여성과 아동 관련 이슈를 연구하는 법관 모임인 젠더법연구회에서 오래 활동했고 이 연구회 회장도 지냈다. 그는 2017년 서울고법 민사18부 재판장일 때 “어머니 성(姓)으로 성을 바꾼 자녀도 어머니가 소속된 종중(宗中)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을 했다. 또 장애 여성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사회복지법인 사건에선 이 법인 임원들에게 성범죄 예방 의무가 있고 이를 어기면 해임 사유가 된다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