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기 끝까지 빚내 돈 뿌리겠다고 선언한 재정준칙," 조선일보, 2020. 10. 6, A35쪽.]


정부가 국가채무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니 방만한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다. 세계 신용평가사는 우리나라의 적정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초반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까지 국가채무비율은 30%대 중반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각종 현금 복지 등 선심 사업이 남발되면서 국가부채가 4년 만에 무려 220조원 늘어났다. 국가채무 비율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40%를 넘어섰고, 이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엔 과거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50%를 넘어서게 된다.


‘재정준칙’이라면 방만한 선심 재정의 고삐를 다시 잡아 건전 재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목표를 담아야 한다. 그런데 국가채무비율 상한선을 60%로 오히려 늘려 빚을 더 내 돈을 뿌릴 수 있게 했다. 재정준칙이 아니라 방만 재정 면죄부다. 심지어 이 재정준칙조차 적용 시점은 문 정부 임기 이후인 2025년부터로 잡았다. 자기 임기 중엔 아무 제약 없이 펑펑 쓰기만 하다가 다음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재정준칙의 꼼수도 한두 곳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적자 폭 한도로 ‘관리재정수지 -3% 이내’를 내부 규율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번 재정준칙에선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합쳐 ‘통합재정수지 -3% 이내’로 정했다. 흑자를 내고 있는 사회기금을 더함으로써 사실상 재정 적자 한도를 -3%에서 -5%로 늘린 것이다. ‘경기 둔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적자 폭을 늘릴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뒀다. 이런 식이면 재정준칙은 있으나 마나 하게 된다.


경제 위기 때는 준칙을 아예 적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경제 위기’라는 단어부터 추상적·포괄적 개념이다. 반(反)기업·반시장 정책 노선이 바뀌지 않고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하면 한국은 경제 위기가 일상이 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채무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40%가 깨졌다”고 정부를 공격하며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당시 민주당은 신규 국가채무를 GDP의 0.35% 이하로 유지하는 매우 엄격한 재정건전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뒤엔 180도 말을 바꿔 마구 빚을 내 돈을 뿌렸다. 있으나 마나 한 재정준칙조차 다음 정권부터 적용키로 한 것을 보면 시장 선거와 대선에서 돈을 마음대로 뿌리겠다고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