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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北의 시험대에 오른 朴정부

2013.07.09 14:57

관리자 조회 수:692 추천:40

[김대중, “從北의 시험대에 오른 朴정부,” 조선일보, 2013. 3. 19, A30.]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친북․종북 세력들이 보란 듯이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며 거리 시위에 나서 연례적 한․미 훈련을 '전쟁 연습', '북침 훈련'으로 몰아가며 북핵을 '자위용'으로 두둔하는 공개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기들을 '애국자'에 비유하고 박근혜 정권이 북한의 세습과 무엇이 다르냐고 주장한다. 지난 총선에서 저들이 대한민국 국회에 진출하는 변란이 일어났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는 해도 이렇게 빨리 또 이렇게 당당하게 진척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범민련 남측본부, 한국대학생연합 등이 동시다발로 나서 북한 핵실험과 대남 '불바다'협박에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이 오로지 한국과 미국 공격에 나선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이들의 행동은 어디로부터 지령을 받은 듯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며 뚜렷한 공통의 목적의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작년 대선 직전 좌파 역사 연구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들어 인터넷에 띄운 동영상 '백년전쟁'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왜곡한 악질적인 반한(反韓) 문건이다. 이승만을 '하와이언 갱스터', 박정희를 '뱀 같은 인간'으로 희화화한 이 동영상은 한국의 경제 발전상을 식민론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이 중․고교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다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와 때를 같이해 벌어지고 있는 북한 정권의 전쟁 위협은 지난 20년 이래 가장 밀도 있고 가장 강도 높고 가장 현실감 있게 이뤄지고 있다. 휴전협정의 폐기, 4차 핵실험 위협, '남한 벌초'등 초강세를 보이는 것은 평소 '그냥 해보는 소리일 것'으로 치부하며 무시해온 일부 남쪽 리버럴들마저 긴장감을 갖게 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휴전선 북쪽에서는 김정은 집단이, 휴전선 남쪽에서는 종북 세력들이 이처럼 때를 같이해 일사불란하게 한국을 옥죄는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북에 문을 닫다시피한 이명박 정권으로 인해 크게 곤혹을 치른 북한 정권이 박근혜 정부가 MB 노선을 답습하지 못하도록 강경 모드를 선보이는 의도인 듯하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두드리고 반응을 보기 위한 기선(機先) 제압용이기도 하다.

저들이 강경 모드로 나오는 또 다른 배경은 북한의 처지와 입장에 동조적인 세력과 계층의 확산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세력 또는 사람이 상당수 늘어났다고 보는 자신감, 또는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은 속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땅에 '반미'와 '반(反)박근혜' 세력이 적어도 어느 정도에 달했다고 자신하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이 저렇게 기고만장하게 무력 도발 협박을 드러내 보일 수 없을 것이고, 남쪽의 종북 세력이 저렇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대한민국 체제를 깔보고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서울 시청 앞 대한문 옆에 세워진 농성장의 문제다. 농성장이 세워진 지 1년의 세월이 지났으면 농성의 원인을 해결해주든지 불법 농성 자체를 철거하든지 했어야 정상적인 정부다. 그것 하나 해결 못 하고 10평 남짓 농성장을 장시간 방치한 당국의 무기력이 바로 종북 좌파에 깔보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문제가 있고 풀기 어려운 난제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 문제의 근처에 접근해보면 그것들은 결국 우리의 이념적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고, 그것을 슬기롭게 뛰어넘거나 조정하지 못하는 무능 때문에 적체돼 있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기업과 일자리도, 양극화도, 문화도 모두 이념적 갈등으로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다.

위정자들은 대한민국 체제를 좀먹는 남쪽의 종북 요소들을 다루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한국 인구의 5% 내에 머무는 상황과 이것이 자라서 10%를 넘어 20%로 이행되고 있는 상황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소수, 즉 5% 미만일 때는 체제의 포용성․다양성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느 수준을 넘으면 체제의 대안으로 발전할 소지가 생기는 법이다. 지난 10년 좌파 대통령 시절 그들은 포용을 내세우고 공존을 두둔했지만 그 결과는 체제의 이질 요소들을 방치하거나 양성하는 쪽으로 빗나갔다. 종북 좌파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우리 체제를 깔보며 당당히 회견을 하고 시위에 나서는 상황을 방치하면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통합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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