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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체제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할 수 없다

2004.10.24 10:02

관리자 조회 수:1095 추천:171

[조선일보, 2004년 9월 4일자 사설을 소개한다.]

대법원은 엊그제 판결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난주 헌법재판소 결정에 이어 국보법의 필요성과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대법원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면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 "북한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북한의 반국가 단체성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판결은 또 국보법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막고 있다
는 것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자유까지 허용함으로써 스스로를 붕괴시켜 자유와 인권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을 범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헌법재판소는 그간 보안법 논란의 핵심 사안이던 '찬양·고무죄'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지 않으며 양심·사상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보법이 없어도 형법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형법과는 별도로 독자적 존재 의의가 있으며 "보안법 폐지는 스스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조치"라고 경고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의 시대적 의미를 떠나서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이 판결을 향한 여당 의원과 폐지론자들의 언동이다. 집권당의 중견 의원은 "한평생 기득권에 취해 살아온 사람들" "청산되지 않은 수구세력"이라고 막말을 해대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대법원의 '인적 개혁'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공공연한 협박까지 하고 있다. 사법부를 향한 이들의 언동은 헌정(憲政)의 기초를 뒤엎겠다는 대중 선동 정치가들의 쿠데타적 발상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걸핏하면 들먹이던  사법부 물갈이론의 저의(底意)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집권당 의원들의 이런 반응은 한국 정부를 '친미(親美) 예속 식민지 파쇼 정권'으로 매도하는 한총련의 유인물을 주체사상과 북한의 선전 선동을 그대로 추종한 이적(利敵)표현물로 규정한 이번 판결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그냥 넘기기 힘들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외세에 부역하고 국토를 분단하는 데 앞장선 반민족·반통일·반민주 세력의 역사'로 규정한 집권당 의원들의 역사관 및 정신 상태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망언을 듣노라면 "오늘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되는상황"이라는 대법원의 걱정이 단순한 걱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금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은 정말로 "나라의 체제는 한 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국가 안보에는 한 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이번 대법원의 판
결을 새겨들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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