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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반공 학생의거

2008.07.30 10:35

관리자 조회 수:1131 추천:77

[김창범, “‘신의주 반공 학생의거’는 학생운동 모델,” 미래한국, 2008. 7. 5, 9쪽.]  
이준영 목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등과 함께 임정요인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유필 선생(1885-1945)의 막내아들이다.
당시 이유필 선생은 임시정부의 재무차장을 맡았으며 신한청년당,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한국독립당 등의 활동에 참가하여 실질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상해 홍구공원에서 이루어진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사건의 배후 주모자로 체포되어 고향 신의주로 압송되어 3년의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45년 일제에서 조국이 해방될 무렵, 8월 16일 신의주 시공회당에서는 시민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평안북도 임시자치위원회가 구성되어 도지사 격인 위원장에 이유필 선생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그리고 부위원장에 백영엽(선천지역 중국교회 목사), 윤하영(신의주제일장로교회 목사), 신의주 시장에 한경직(신의주제2장로교회 목사), 교육부장에 함석헌을 각각 선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시공회당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감격의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위원회 활동이 시작되자마자 8월 23일 소련군이 신의주로 진주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위원회는 외압으로 인민공화국 지지를 결의하였고 소속 위원들을 함경도 사람들로 교체하여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중상모략으로 우익인사들을 몰아내게 했다.
겉으로는 모든 민주적 방법과 절차를 동원해서 우익인사들의 비행과 부도덕을 공개하고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리고 관공서를 비롯한 모든 기관, 학교, 산업체 등을 접수했다. 시민들이 참여한 평북도자치위원회는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유필 선생은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에 의해 연금되어 위원장으로서의 모든 활동이 금지되었다.
악랄한 소련군의 압제 가운데 정의로운 학생들이 저항하여 일어나 역사적 사건인 ‘신의주 반공 학생의거’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1945년 11월 18일 신의주 서쪽 약 20㎞ 지점의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열린 시민위원회 주관의 ‘인민위원회 지지대회’에서 연단 위에 오른 학생자치대 대표가 소련군과 조선공산당의 실정과 횡포를 비난하는 한편, 조선공산당이 정치훈련소로 사용하는 수산학교의 반환을 요구하자, 군중이 이에 호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날 대회 참석자들 간에 격투가 벌어져 사망자 1명과 부상자 12명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신의주 학생자치대 대표들은 시위를 계획하고, 11월 23일 정오와 오후 2시 신의주에 있는 6개 남녀중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보안부, 당위원회를 향한 시위를 벌였다. 이것이 이른바 ‘신의주반공학생의거’였다.
이들은 “신성한 학원 내에 자유를 보장하라!” “학원 내에 정치세력의 침투와 외래의 간섭이 부당하므로 학생은 총궐기하여 이에 결사반대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했다. 이에 보안대와 소련군은 무력으로 대응, 무차별로 다발총을 발사하여 사망 23명, 부상 700여명이 발생했고 이외에 1,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이 무렵 신의주 지역교회들은 항일운동과 반공운동의 실제적 후원자였다. 신의주제일장로교회, 제이장로교회, 성결교회 등에서는 수천 장의 태극기와 전단지를 만들어 공급하였고 행진에 앞장서는 일도 감당했다. 또 성도들은 밤새 기도로 후원하였다.
당시 이준영 목사도 열여섯의 소년이었지만 시위에 참여했으며 총이 발사되자 강둑을 넘어 제철소 공장 안으로 피신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유필 선생은 소련군의 강제연금을 뚫고 이미 서울에 와 있는 김구, 여운형 등 임정 요인들과 합류하기 위해 상경을 결정했다. 가족들은 벌써 서울에 정착해 있었으므로 막내아들인 이준영 목사와 함께 북한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유필 선생은 11월 29일 환갑날, 혹한의 추운 밤에 38선을 눈앞에 두고 황해도 해주의 학현이라는 지역에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처절히 싸워왔던 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신의주장로교회의 장로로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온 부친의 영향을 받아 돈독한 믿음을 가졌던 이준영 목사는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당황함이 없이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의 부족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육신의 아버지께서 못다 하신 일을 이어 철저하게 주님 앞에 충성하겠나이다” 하고 서원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망연해하던 이 목사 앞에 설상가상으로 소련군이 나타났다. 그 때 이 목사는 기지를 발휘하여 아버지로부터 배운 소련말을 사용해 가며 “우리 아버지는 북한을 좋아해서 평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돌아가셨다. 마침 청단지역(38선 이남)에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러자 소련군은 아버지의 유해를 거두어 청단까지 옮겨주었다고 한다.
이준영 목사는 서울에 들어와 먼저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고 때마침 경교장(김구 선생의 사택)에 모여 있던 외신기자들에게 ‘신의주 반공 학생의거’의 소식을 전해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평북도자치위원회에 참여했던 백영엽 목사는 남하하여 대광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했고 윤하영 목사는 충북도지사,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 설립목사, 함석헌 씨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이준영 목사는 부친 이유필 선생과 함께 공산세력의 비인간적 처사들을 생생하게 체험한 세대로서 오늘날 젊은이들의 좌파세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염려가 크다고 털어놓았다.
신의주인민위원회 시절에 수도 없이 들어온 인민의 자유와 해방은 모두 거짓에 불과했고 수많은 양민이 납북되고 피살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공산세력이 이 땅에 뿌리내려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6.25전쟁 중에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최근 미국산 쇠고기를 가지고 시비하는 것은 결국 미군철수를 목적하는 것으로서 이 땅을 공산화하려는 책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별히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최근 준동하고 있는 좌파세력의 정체에 대해 좀 더 깊은 경각심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에 열심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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