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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 항일 + 반공

2016.09.22 10:28

관리자 조회 수:237

대한민국 건국 = 항일 + 반공


[류석춘, “대한민국 건국 = 항일 + 반공,” 조선일보, 2016. 9. 7, A34; 연세대 교수, 사회학.]


대한민국을 건국한 동력은 무엇인가?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국가 정체성 논란의 핵심에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세계 10위권 수준이라는 평가에 우리는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준이나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기준은 물론이고 복지제도와 같은 사회적 기준, 나아가서 과학 기술 및 생활 양식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기준에서도 우리는 세계 상위권 국가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번영의 기초를 우리는 언제 놓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출발하면서부터다. 전통 국가 조선도 아니고 일본이 지배한 식민지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 기본 운영 원리로 채택한 대한민국이 국회, 헌법, 정부를 순차적으로 만들어나간 1948년이 그 출발이다.


그렇다면 이를 만들어낸 동력은 무엇이었나? 두 가지 힘의 결합으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항일'(抗日)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공산주의와 싸운 '반공'(反共)의 힘이다. 이 두 가지 힘 가운데 하나만으로는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 없었다. 항일만 해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고 치면 그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나라가 되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이 여기에 해당한다.


잠시 역사를 되돌려보자. 항일의 결과로 1945년 해방되고 나니 한반도에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북한 공산 정권, 그리고 이 정권을 뒤에서 사주하고 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이다. 그러나 당시 남한을 통치하던 미 군정은 이러한 사정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에서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도 미 군정은 신탁통치를 추진했다.


또한 신탁통치를 두고 좌파의 찬성과 우파의 반대가 극렬히 대립하자 미 군정은 다시 좌우 합작을 추진했다. 박헌영과 같은 탈법적 좌파 그리고 이승만과 같은 반공 우파 지도자를 따돌리는 대신 미 군정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좌파인 김규식과 여운형을 군정 파트너로 삼았다. 이승만은 강력히 반발했다.

이승만은 동구에서의 좌우 합작이 결국 소련의 위성국 건설을 위한 시간벌기였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46년 6월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1946년 3월 토지 개혁을 하는 등 이미 사실상 공산국가를 건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구의 실패를 겪으며 다행히 미국도 정신을 차렸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팽창하는 공산주의를 마주하며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1947년 3월 소련과의 냉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 선언에 따라 좌우 합작은 동력을 잃었고, 이승만의 반공 노선은 마침내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유엔은 1947년 11월 한반도에서 인구 비례에 따른 총선을 결의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그냥 단순히 거부한 것만이 아니었다. 1948년 5월 10일로 예정된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북한은 남로당과 좌익 계열을 총동원해 살인, 방화, 파업, 폭동을 일으켰다. 제주의 4․3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대한민국은 건국했다. 그러므로 반공은 항일만큼이나 대한민국을 건국한 동력이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힘에서 반공을 지우고 항일만을 내세우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잘 알려졌다시피 김원봉은 해방 전 공산주의 계열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임시정부 좌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했던 김원봉은 북한으로 넘어가 노동상 즉 노동부 장관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항일운동을 했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조력자가 되었을 뿐이다. 반공을 뺀 항일만으로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 이것이다.


김구는 해방 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가장 탁월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임시정부 우파의 중심 인물인 그는 중국에서 외교․군사․의열 등 모든 분야의 항일 투쟁을 지휘하는 최고 지도자였다. 귀국 후에도 1947년까지는 이승만과 더불어 반탁․반공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는 1948년 1월 이후 대한민국 건국의 최종 단계에서 공산 세력과 남북 협상을 전개하면서, 5․10 선거를 부정했다. 그래서 김구는 대한민국 독립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대한민국 건국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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