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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극일(克日) 대한민국’이 ‘친일파 나라’라니,” 조선일보, 2009. 12. 1, A38쪽; 서울대교수, 윤리교육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로 낙인찍히면 갈 곳이 없다. 그야말로 세세대대로 ‘주홍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이루어지는 대통령의 사면 대상도 될 수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일본이 "자신들보다도 더 일본을 사랑했던 한국인"이라고 하여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친일의 굴레를 쓴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 못해 자기 변호조차 할 수 없으니 영락없이 부관참시를 당하는 판국이다. 그렇기에 민간기구도 아닌 국가기관이 친일 여부를 가늠할 때는 그야말로 역사와 민족 앞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결연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당사자 본인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일인 동시에 민족공동체가 이미 받은 깊은 상처에 소금까지 뿌리는 비열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모두 1005명의 친일행위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특징이라면 과거 반민특위가 작성한 명단에 교육계, 문화.종교계, 군 원로인사들을 대거 추가했다는 점이다. 이 명단을 보면서 드는 의구심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재판에 임하는 재판관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인 “다른 편의 말을 들어라(audi alteram partem)”라고 하는 철칙을 왜 그토록 무시했을까 하는 점이다. 위원들이 편향된 역사의식과 특정이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을까. 이번처럼 부정확하고 제한된 자료에 의존하면서도 유족들의 이의제기를 대부분 묵살한다면 고발자만 있고 자기변호를 할 수 없었던 중세기의 마녀재판과 무엇이 다른가.

식민통치 35년이란 긴 세월이었다. 그랬기에 이 땅에 봄이 와도 ‘우리의 봄’이 아니라 ‘일제의 봄’이었고 하늘이 파래도 ‘우리의 하늘’이 아니라 ‘일제의 하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땅과 하늘은 빼앗겼지만, 영혼까지 잃지는 않았다. 한 민족이 영혼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치른 후 노예해방을 했지만, 정작 남부의 많은 노예들은 그 자유를 반기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그들은 몸만 노예가 아니라 마음도 노예였던 것이다. 아무리 하늘을 힘차게 날던 독수리도 긴 세월 닭장에 가두어 놓으면 닭처럼 되어 날기를 거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았다. 몸은 묶여 있었으나 마음은 자유를 갈구하고 있었다. 일본말을 쓰고 창씨개명을 하며 신사참배를 하고 학도병이나 정신대에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일제가 패망하자 한결같이 약속이나 한 듯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신사참배를 했건 창씨개명을 했건 "천황 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한국인은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혹독한 일제하에서도 민족혼이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그 민족혼을 끊임없이 불어넣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이야말로 대부분 언론인과 교육자, 종교인과 문인으로 활동한 사람들인데, 규명위는 일제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하여 친일로 규정한 것이다.

조선의 지도급 인사였던 그들에 대해 일제는 더욱더 삼엄한 감시를 했고 특정행위를 강요했다. 그 결과 한두 개의 행적을 남겼을는지 모르나, 친일 부역자는 아니었다. 드러내놓고 저항은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민족혼을 고취했던 사람들이며, 일제에 무력으로 맞선 전사는 아니었으나, 수모를 당하면서도 민족혼이 잠들지 않도록 노심초사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해방이 되자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과 더불어 극일의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는 데 크게 헌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규명위가 이들을 친일파로 단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승리했다”는 좌파들의 해묵은 주장을 두둔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혼미한 해방정국에서도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건국 세력을 모욕하기 위함인가.
옛날에 형제들이 싸우면서 서로 “병신”이라고 욕하면 어른들이 타이르던 말이 있다. “형이 병신이면 동생은 뭐지?” 하는 되물음이었다. 아버지 세대를 친일파로 낙인찍으면 후손들은 항일 세대가 될 수 있는가. 가혹한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던 아버지 세대는 형언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피해자인데 "일제가 얼마나 악랄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라는 말을 하기보다 마치 가해자처럼 “너 때문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아느냐”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인민재판식 ‘아버지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라는 뜻의 ‘퀴 보노(cui bono)’라는 질문을 했다. 한창 민족의 역량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식민시대를 살았다고 하여 친일의 굴레를 씌워 건국.호국세력을 욕보이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규명위에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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