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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가 무엇인가?

2014.02.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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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가 무엇인가?

오늘날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말은 말하는 이의 지식과 분별력과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일찍부터

보수주의를 근본주의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보수주의 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근본주의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다. 보수장로교친교회는 신복음주의나 복음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반대했기 때문에 제안되었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들 가운데서도 ‘근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나 비평을 들을 수 있다. 그럴 때에는 혹시 복음주의의 오류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기도 한다.

근본주의는 무엇이며,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또 근본주의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와의 싸움에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와의 투쟁에서 일어났다. 19세기 후반, 기독교회 안에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평하며 연구하는 풍조가 일어났다. 더욱이, 진화론과 유물론(唯物論)이 나타남으로 이 풍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싹트고 성장하였다. 유럽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학적 자유주의는 온 세계에 영향을 끼쳤고, 세계 교회에 큰 역할을 했던 미국 교회들도 마침내 20세기 초 자유화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대교단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적이다.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 연합감리교회(UMC),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합중국장로교회(PCUSA), 침례교회(ABC) 등이 그러하다. 우리나라도 기장과 기감을 비롯하여, 예장통합, 기성, 기침 등이 자유주의적이다.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로 보지만, 자유주의는 교리를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의 한 시대적 상징이며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의 특징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는 성경의 신빙성을 부정하고 성경의 신적 권위와 무오성(無誤性)을 부정한다. 또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하며 그의 기적들, 그의 대속(代贖)의 죽음과 그의 육체의 부활과 재림을 부정한다.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이다.

근본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교회 안에서 싹트고 세력을 얻기 시작한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났다. 19세기 후반에 나이아가라 예언사경회는 1878년 14개 조항의 근본 신조들을 선언하였다. 1910-1915년에 근본교리들이라는 책자들이 약 300만부 무료로 배포되었다. 1910년 북장로교회는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및 기적들의 사실성 등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선언하였고, 이 선언은 1916년, 1923년 총회에서 두 번이나 재확인되었다.

케넷 라투렛은 말하기를, “1914년 얼마 전에 [자유주의, 사회복음, 성경의 고등비평, 진화론 등에]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 교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고수(固守)하는 것 때문에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렀고 또 다른 이들로부터도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조지 마스덴은 “미국에서의 근본주의는 전투적으로 반(反)현대주의적인 복음주의적 개신교 운동으로 가장 잘 정의된다”고 표현하였다.

박형룡은 말하기를, “근본주의는 별다른 것 아니라, 정통주의요 정통파 기독교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통적 신앙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 즉 정통 신앙과 동일한 것이니만치, 이것은 곧 기독교 자체라고 단언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정의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 자체다”라고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이 분명히 이단이므로, 성경적 교회들은 자유주의자들을 단호히 배격하고 배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단에 대해 우리가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을 밝히 가르쳤기 때문이다.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그러나 근본주의는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그 입장이 더 분명해졌다. 20세기 초 미국의 교계는 자유주의(현대주의)와 근본주의(보수주의, 복음주의)와의 싸움을 치루었다. 이 싸움에서 겉으로는 근본주의가 패배하였고 대교단들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가 되었다. 그때 근본주의는 자유화된 교단들로부터 분리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이단을 포용하는 것이 주께 대한 배신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 교회에는 많은 교회적 분리가 있었다. 이때 많은 독립 교회들이 생겼고 또 작은 교단들도 생겼다. 미국 근본주의 독립교단(IFCA), 정식 침례교회 총협의회(GARBC), 미국장로교단(PCA, 1939년에 OPC로 개명), 성경장로교단(BPC) 등이 그 결과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와 ‘신복음주의’라는 운동이 일어났다. 1948년 풀러 신학교 강연에서 해롤드 오켄가는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1930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1936년 교회 분리시 메이천을 따르기를 거절했다. 1942년 그는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NAE)를 조직, 초대 회장이 되었고, 또한 풀러 신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는 크리스챤니티 투데이지의 이사장으로 25년간 있었고, 1985년 79세에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보스톤의 파크 스트릿 교회의 담임목사로 33년간 봉직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의 절친한 친구요 신학적 조언자이었다. 그는 풀러 신학교 교장 취임시 분리주의자들을 비난했고 자기 신학교는 교단들 안에 있는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1957년 한 뉴스 팜플렛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진술하였고, 또 후에 “신복음주의는 분리주의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했다. 1951년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현재 WEA의 전신)가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NAE)들이 모여 조직되었다. 신복음주의는 점차 자신을 단순히 ‘복음주의’로 불렀고, 오늘날 복음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이와 같이,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의 교회적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방법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대도시 전도집회시 자유주의적인 교회협의회(NCC)의 후원을 받았고 심지어 천주교회들의 후원도 받았다.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지만,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전도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이단들과 함께 전도한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용납할 수 없는 자기 모순이다.

박형룡은 신복음주의에 대해 20가지 요점으로 비평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에 대해 가혹히 비판한다. 학문성 결여, 반교파주의, 세대주의, 부정주의 등이 그 비판의 내용이지만, 근본주의에 대한 가혹한 비평은 비평자의 정통성을 의문케 한다. (2)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와 타협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신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무오를 부정하고 성경의 파괴적 비평을 수용하였다. (3) 신복음주의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수납한다. 즉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에 대해 진화론적 개념이나 지질학적 연대를 받아들인다. (4) 신복음주의는 이적 부인의 경향을 띤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성탄의 교리를 중요하지 않게 본다. (5) 신복음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사회복음운동에 따라간다. 신복음주의자들은 민권 투쟁, 빈민 행진 등 과격한 사회정치활동에 참여한다. (6)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가진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신학적 대화를 원하고 그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강사로 초청하며 전도집회시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회들과 협력한다. 더욱이,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 교단들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 머문다. 결론적으로, 박형룡은 신복음주의자들이 잘못 아는 형제들이거나 열렬하지 않은 이단들일 것이라고 말을 맺는다.

신복음주의-복음주의적 포용주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 교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986년 9월 8일 한국장로교협의회(회장: 이종성)는 새문안교회에서 노춘경 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고, 5개 교단(예장 통합, 합동, 고신, 대신, 기장) 지도자들 150여명이 참석했다.

1990년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준곤)는 홍콩 국립 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대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를 실시했는데, 그 장소는 부산 수영로교회(정필도 목사), 대구 서문교회(이성헌 목사), 대전중앙교회(신성종 목사) 등의 예장합동 교회들을 포함했다.

우리나라의 보수적 교회들의 연합체라고 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인사들(최 훈, 지 덕, 정진경, 한명수 등)은 거의 20년 전부터 한국교회협의회(NCC)와의 통합을 논의했고 자유와 보수에 대한 분별력이 전혀 없었다.

2012년 11월 30일,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예장합신 전 총회장 권태진 목사는 정기총회에서 “한장총은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극진보와 극보수를 아우르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도 교회 갱신을 말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 것 같다.


교제와 분리의 원리

자유주의와의 싸움과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근본주의는 교제와 분리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지켰다.
첫째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 분리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단으로부터 분리하라고 말한다. 이단은 독한 창질과 같고(딤후 2:17-18) 저주받을 일이며(갈 1:8) 멸망케 할 사상이기(벧후 2:1) 때문에, 우리는 이단을 용납하지 말고 배격해야만 한다.

고린도후서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로마서 16:17-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너희가 배운 교리 혹은 교훈을] 거스려[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요한이서 7-1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오늘날 기독교계 주위에 있는 이단들은, 첫째는 천주교회이며, 둘째는 19세기 이후에 나타난 여러 이단종파들이며, 셋째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우리는 특히 기존 교단들 속에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자들과 교제를 끊어야 한다.

메이천은 이렇게 말했다: “한가지 사실이 완전히 명백하다. 즉 자유주의자들이 기독교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자유주의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은 여하튼 완전히 분명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러하다면, 자유주의와 기독교가 계속 동일한 조직체 안에서 전파된다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 안에 있는 그 두 부류들의 분리는 이 시대의 절실한 요구이다,” “만일 자유주의파가 실제로 교회의 기관들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은 그 교회의 활동을 계속 후원할 수 없을 것이다. . . . 만일 자유주의파가 실제로 교회를 장악한다면,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설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또 그는 말했다. “오늘날 가장 나쁜 죄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동의하고 성경을 믿는다고 말한 다음,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부인하는 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에드워드 영은 신복음주의가 전도와 학문과 교육을 강조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그것[신복음주의]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교리와 신앙을 위한 활기찬 투쟁의 필요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강조한다. . . . 그러면 신복음주의가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해답인가? 우리는 아니라고, 강조해서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한 일시적 현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빨리 지나갈수록 교회를 위해 더 유익하다. . . . 근본주의 안에는 훌륭한 많은 점들이 있고, 만일 우리가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를 당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주저도 없이 근본주의를 택해야 할 것이다. 근본주의는 신앙의 변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관심은 참으로 성경적이다. . . . 그것[근본주의]은 실수들을 범했으나, 외쳐야 할 적절한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저 조심성 있는 중도파들이 범한 것과 같은 그렇게 큰 실수는 아니었다.”

오류와 악은, 교리적 이단이든지, 윤리적 죄악이든지 간에, 누룩처럼 교회 안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악의 제거, 악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라디아서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디모데후서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오늘날 세계의 대교단들이 자유화된 상황이므로 세계교회협의회(WCC)나 각 나라 안의 교회협의회(NCC)는 명백히 잘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유의 연합활동들을 반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교회를 포함하는 초교파적 연합집회들, 부활절 연합예배, 연합성찬식, 성서공회, 찬송가 공회, 방송국 등의 연합활동들은 옳지 못하다. 보수교회들 간의 초교파적 연합활동들은 필요하지만, 자유주의 교회를 포용하는 연합활동은 옳지 않다. 기독교는 물량주의나 숫자주의나 실용주의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믿고 행하는 것이다.

둘째로, 근본주의는 복음주의 즉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성경적 교회들이 x타협적 복음주의자들, 즉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자들을 계속 용납할 것인가? 그들에게도 징계와 교제 단절이 필요하지 않은가? 근본주의자들은 그렇다고 확신하였다. 타협도 성경의 교훈을 어기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의 성경적 근거를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에서 찾았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이단을 배격하라는 교훈을 거역하고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하는 복음주의자들은 사도적 교훈을 무시하고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불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이 비록 주 안에서 우리의 형제라 하더라도, 교회는 그들의 무질서한 불순종과 타협을 용납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그것을 책망하고, 성경에 계시된 교훈대로 그들과의 교제도 끊는 것이 옳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화해자이시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의 진정한 형제이며 우리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생각되지만, 회개치 않는 그들의 악에 대한 책망과 권징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명령이다. 개혁교회는 권징의 성실한 시행이 참된 교회의 세 번째 표지라고 고백해왔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교단들에 속한 신실한 목사들은 교단들 내에서 교단들의 각성과 갱신을 위해 먼저 성실히 노력해야 하지만, 다른 동료들과의 교제에 있어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교제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지키느냐, 어기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타협적 동료들과 교제하고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머잖아 저 타협자들과 교제를 끊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제의 단절에 있어서 성도로서의 온유와 겸손의 덕을 잃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교만은 그 어떤 죄보다 더 큰 죄이다. 우리는 먼저 교회의 각성과 개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해야 하고 그런 후 교제 단절의 때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결론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적 배교와 복음주의적 타협으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초교파적 운동이다. 우리는 근본주의의 초교파적 성격도 이해해야 한다. 자유주의적 배교는 전 기독교회의 현상이며 근본주의는 이에 대한 공동적 대응이다. 오늘날에는 개혁주의라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개혁주의라는 이름 아래 타협적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며 말하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적 정당성을 가지며, 권징을 강조함에 있어서 개혁교회의 역사적 지원도 가진다. 자유주의는 명백히 이단 사상이므로 성경적 교회는 마땅히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해야 하고 자유주의자들은 교회에서 제명 출교되어야 한다. 또 데살로니가후서 3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복음주의자들로부터의 분리도 정당하다고 본다.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복음주의는 악에 대한 타협이며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적 보수교회들은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무분별한 연합 활동들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주의적/포용주의적 교회들과 교제해서는 안 되고, 성경적 보수적 교회들과만 교제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지고 목사후보생들을 충성되이 교육해야 한다. 우리는 근본주의적 장로교회 혹은 근본주의적 개혁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말씀의 부흥과 교회의 각성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교회 각성의 방향과 내용이 첫째는 개혁신학의 부흥이어야 하지만, 또한 자유주의적 배교와 복음주의적 타협으로부터의 분리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바른 길, 바른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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