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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성, "왕의 재정에 대하여"

2016.01.06 20:25

oldfaith 조회 수:1577 추천:1

왕의 재정에 대하여
 
몇 해 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어떤 교회에서는 청년부 리더들을 위한 영성 학교를 열어 당시 기독교인의 재정 강의 분야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한 강사를 초청했다. 그가 바로 ‘왕의 재정’이란 책을 쓴 김미진 씨였다. 청년들은 그녀의 강의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같은 해 강원도 영동 지역의 한 교회에서 기독교인의 재정에 대한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여기에서도 성도들은 그녀의 강의에 열정적으로 반응했다. 강연을 계획한 목사도 성도들의 반응에 고무돼 기뻐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난 다음 한 성도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목사에게 “어떻게 이런 사람을 우리 교회에 초대 했느냐”고 따졌다. 이에 목사는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유난하냐”면서 강사인 김미진 씨를 칭찬했다.
 
위의 이야기들은 김미진 씨와 그녀의 강의인 ‘왕의 재정’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녀의 강의는 최초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소개된 이후 ‘기독교인의 재정’ 분야에서 최고의 강의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유명세를 반영하듯 그녀의 책 ‘왕의 재정’은 기독교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작년 6월 초판이 나오고 3개월 만에 15쇄 이상을 찍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녀의 강의와 책의 내용에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경 해석과 하나님의 음성 듣기가 그렇다. 그러나 글의 목표가 기독교인의 재정에 대한 것이기에 이는 차후로 미루고 이글을 통해서는 그녀의 재정관과 빚에 대한 관점과 태도, 투자나 저축에 대한 개념들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의 강의와 글이 왜 지금 기독교인들에게 인기 있는지와 기존 교회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분석하려고 한다.
‘왕의 재정’의 재정관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돈에 대한 태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이다. 문제는 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돈을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이 돼야만 돈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훈련에 있어서 그녀가 선호하는 방식이 과연 성경적인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들지만 전제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한편 김미진 씨는 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넘어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소망해야하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아브라함이 부자였다는 것을 지적하며,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과 축복은 땅에 대한 것이었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땅을 살 돈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재물에 대한 축복을 가장 먼저 주셨다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창세기 1장에 나온 문화명령을 이루기 위해서도 땅이 필요하며, 이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며, 문화명령의 시행자인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첫 번째 축복이 재물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김미진 씨의 관점은 부를 추구하는 태도의 정당성뿐 아닌 기독교인의 존재 이유까지 재물의 부를 통해 설명하려하는 과도한 시도이다.
 
또한 김미진 씨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를 추구하는 자들을 성부, 바울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의 일만을 하기 위해 가난을 선택하는 자를 성빈, 단지 부를 좇는 자들을 속부로 나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빈(사역자나 전적으로 교회의 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기독교인들은 성부를 추구하는 소명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녀가 책의 일부에서 성부가 꼭 부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자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영적으로 부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재물의 축복이 주어진다는 당위성을 책에서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김미진 씨가 주장하는 재정관을 간략히 살펴봤다. 요약하자면 그녀는 돈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보지만 거룩한 성도라면 당연히 물질적인 부를 축복으로 받는다는 사상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어 그녀의 재정관과 논리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들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가 사용하는 문화명령과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내용과 관련된 땅, 하나님의 나라가 그녀의 주장처럼 단지 물질적 땅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원래부터 하나님의 것이며,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땅이라는 물질적인 개념보다 통치라는 의미에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경을 봤을 때, 아브라함이 부자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가 땅을 구입하게끔 부를 허락하셨느냐는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의 부가 그가 고향을 떠난 후 얻은 부인지에 대해서도 성경에서 명확하지 않고, 혹 그렇다고 할지라도 땅을 구입하기 위해 그 부가 필요했다는 점도 너무 터무니없다.
 
셋째로 경건한 기독교인은 반드시 재정적인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오스기니스가 그의 책 ‘소명’에서 “개신교적 왜곡”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소명을 세속적인 경제활동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다. 오스기니스는 산업사회가 되면서 부를 획득한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경건을 부의 축적과 사용을 통해 증명하려했다고 지적한다. 김미진 씨도 성부를 증명하는 길로 돈을 가난한자, 사역자, 종교적인 사업에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든다. 그리고 이는 하늘나라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재정관의 큰 문제점은 그녀가 하늘나라 은행에 저축하는 것인 가난한자, 사역자, 종교적 사업에 재정을 지출하는 것을 투자, 저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녀는 하늘나라 은행의 이율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은 ‘배가’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녀는 그 근거를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옥토에 심긴 씨앗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그 비유가 기독교인의 재정에 대한 비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아무리 양보해도 성경적 어떤 지지도 받을 수 없는 해석이다.
 
또한 헌금에 대해서도 “재정에 있어 심을 씨에 해당하는 것이 십일조”라고 말함으로 헌금을 많이 하면 많은 보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재정의 목표를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도전이 되는 삶은 90% 기부하고, 나머지 10%도 넉넉해 모든 것에 넘치는 삶이다”라는 것이다. 결국 나머지 10%로 넉넉하려면 계속 더 많은 부를 추구해야하든지 아니면 극도의 가난한 삶을 추구하는 금욕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는 벤츠를 끌고 다니며 순수하게 개인 용돈으로 한 달에 500만원을 쓴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성부는 금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욕망을 교묘히 경건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그녀의 재정관이 과거 기독교인은 최고 리더가 되거나 성공해야한다는 고지론, 깨끗한 부자가 돼야한다는 청부론, 번영신학, 기복주의 등의 다른 표현일 뿐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경 해석과 논리에 있어서는 이전에 나온 책들보다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별다를 것 없는 이 책이 왜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빚의 그림자를 들추다?빚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돕고 있는 키움에셋플래너의 백정선 소장은 과거에는 빚이 개인의 사치나 경제관념의 부재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빚 문제가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사회가 빚을 조장하고 있기에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서 학자금 대출이나 주택 문제로 빚을 지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김미진 씨는 이러한 한국적인 상황을 그녀의 책에서 잘 이용하고 있다. 그녀는 40억 원의 부채로 도망치듯 제주도 열방대학에 갔던 기억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녀는 제주도 앞바다의 해초를 뜯어 먹고, 간장과 밥으로 수개월 동안 끼니를 때우던 시절을 통해 빚으로 인한 고통을 처절하게 경험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빚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고, 결국 빚을 지는 것은 맘몬(돈신)에 사로잡히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공식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녀는 40억 원이란 빚을 다 갚게 되는 데, 그 과정을 매우 소상하게 책과 강의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당시 처분하지 못한 30억 이상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갚은 것은 10억 남짓한 금액으로 보인다. 이도 거액임은 분명하다.
 
빚에 대한 그녀의 단호한 태도는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손가락이 골절됐지만 병원비를 빚지지 않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고 나무젓가락으로 부목을 대어 양말로 감아놨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다. 결국 교회 사모가 아이를 보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줬지만 이를 빚지지 않고자하는 노력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필자는 좀처럼 동의하기 어려웠다. 과연 자녀의 건강과 빚지지 않겠다는 신념이 서로 맞바꿀 수 있는 문제일까? 이렇듯 그녀는 빚에 대해서 처절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결국 그녀는 빚에서 탈출했고, 그녀가 주장하는 성부로서 거듭난다. 이러한 성공담들이 책과 강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공담은 교회에 시간을 내어 더 봉사하고 더 많은 헌금을 하고자하는 많은 성도들의 내적 죄책감을 자극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 좀 더 헌금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빚을 진 성도들은 이자와 원금의 일부를 상환하는 것과 형편에 따라 헌금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여기에 자녀들의 교육비, 의료비, 예기치 못한 경조비로 인해 매월 부채가 더 쌓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니 언제나 더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과 미안함이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있다. 또한 빚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해 빚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죄책감에 시달린다.
 
위와 같은 상황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김미진 씨는 빚을 완전히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빚을 해결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워크숍을 통해 빚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경험담과 예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적인 격려를 통해 빚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빚만 해결하면 성부로서 하늘나라 은행에 저축해 배가의 이윤을 남길 것이라는 경제적 축복의 장밋빛 희망까지 제공해 준다.
 
필자는 이러한 그녀의 접근은 비성경적이며,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의 성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희망고문’으로 나도 저 사람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공허한 희망만 잔뜩 심어줘 나중에는 더 큰 상실감만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미진 씨의 접근법에서 우리 기성 교회가 배울 점이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실제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부분에 교회와 사역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면서 이미 임한 현실의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는 교회의 가르침의 공백에 김미진 씨과 같은 분들의 가르침이 침투해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빚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다. 성경에서도 희년을 통해서 빚을 탕감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또한 예수님은 형제에게 돈을 꿔줄 때는 돌려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눅 6:34). 당시 이러한 빚의 내용은 대부분 생계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더욱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경건한 태도였다. 그러나 현대는 생존의 문제라기보다는 품위의 문제로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를 단지 품위의 문제이니 개인의 절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품위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품위도 생명,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 봐야 한다. 그 구체적인 기준은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기에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누구든 저 정도는 사치, 욕망이라고 인정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빚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과 개인의 게으름과 사치로 접근해야 할 문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증폭시켜 교회도 사회가 이들을 죄인 취급하듯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울에게 쫓겨 달아나던 다윗에게 집을 잃은 여러 부랑자들이 찾아와서 안정을 찾고자 했다. 성경은 이들 중에 빚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자들이 있었다고 밝힌다(삼상 22:2). 그들에게 다윗과 아둘람이란 공동체는 빚 문제를 해결해 줄 새로운 사회를 꿈꾸게 했다. 지금 교회가 그런 아둘람 공동체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빚은 개인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되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들을 정죄하면서 헌금이 거치지 않는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보다는 이들의 아픔에 동참해 아둘람과 같은 소망을 줄 대안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럴 때에만 김미진 씨 같은 사람들의 엉뚱한 재정관과 축복관으로 교회의 신앙을 싸구려 기복주의와 맞바꾸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왜 강남 청년들은 그녀의 강의를 좋아했을까? 그것은 그녀의 강의가 이들에게 제동장치 없는 성공에 대한 욕망에 경건이란 옷을 입혀줬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지방의 성도들은 왜 좋아했을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희망과 더불어 성공을 욕망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목사는 왜 좋아했을까? 성빈인 자신과 교회의 사업을 위해 더 많은 헌금이 들어올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각자의 욕망을 채워주는 강의와 책을 탁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욕망해도 괜찮은 것일까?
 
글의 출처: 이춘성 목사; 강릉한마음교회 교육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필자는 한국 라브리에서 십 여 년을 간사로 사역하였고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윤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http://cafe.daum.net/ssrch/A0zl/30?q=%BF%D5%C0%C7%20%C0%E7%C1%A4%BF%A1%20%B4%EB%C7%CF%BF%A9&re=1

2015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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