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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 악인에 대한 심판을 호소함

[1-2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 . . .

시편 저자는 말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窘迫)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시편 저자는 지금 큰 환난 가운데 있다. 그는 자신을 ‘가련한 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핍박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혹은 ‘가련한’이라는 원어들(아니 혹은 아나우)은 ‘가난한, 가련한, 겸손한, 고난 당하는, 핍박당하는’이라는 뜻을 가진 동의어(同義語)들이다. 이 말은 성도를 묘사하는 말로 쓰인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악하고 교만하지만, 성도는 심령이 가난하고 겸손하며 때때로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

시편 저자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지 않고 멀리 서 계시다고 느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깊으시고 높으신 뜻 가운데 성도를 환난에 버려두신다(시 13:1; 35:22; 38:21). 하나님께서 환난 때에 우리의 산성이시요 피난처시며 큰 도움이시지만(시 9:9; 46:1), 성도는 때때로 하나님의 즉각적 도우심을 경험치 못한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악인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호소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구를 들으실 것이다. 그 어렵고 답답한 시간은 그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고 영적인 큰 유익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은 그의 믿음을 더 순수하고 강하게 만들 것이다.

[3-4절]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다시 번역하면, “이는 악인이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탐욕자들을 축복함이니이다. 악인은 그 얼굴의 교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나이다”(KJV). 이 본문은 악인으로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 간구의 이유를 나타낸다.

악인은 세상적 욕심을 자랑한다. 성경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라고 말한다(요일 2:16). 또 악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탐욕자들, 즉 불의의 이익을 취하는 자들을 축복한다. 악인은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에 속한 자들을 사랑한다.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그의 삶의 목표요 가치 기준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우리는 한 주인을 선택해야 했으며 하나님을 유일한 주인으로 선택하였다. 성도는 그 정(情)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이다(갈 5:24). 우리 가운데 아직도 돈을 사랑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헛된 신앙의 건설자이다.

악인은 또한 교만하며 무신론적이다.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의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면 모든 악을 회개했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악을 떠날 수 있다. 잠언 16:6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만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는 악을 버리지 못하며 돈 사랑과 육신의 쾌락 사랑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5-7절]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眼力)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악인의 길은 때때로 견고해 보인다. 성경도 그것을 말한다. 욥은 악인이 장수하고 세력이 강하며 형통함을 말했다(욥 21:7-13). 시편 73편의 저자도 악인이 형통하고 건강하고 평안함을 말했다(3-12절). 선지자 예레미야도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고 말했다(렘 12:1). 더욱이 하나님의 심판은 높아서 악인의 눈에 미치지 못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느끼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악인은 또 모든 대적자를 멸시하고 자신의 평안과 형통을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실패나 고난에 대해 생각지 않는다. 이것은 놀라운 패기와 용기같이 보이지만, 실상 헛된 자만심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자신의 미래를 자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일 뿐이다.

또 악인의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다. ‘죄악’이라는 원어(아웬)는 ‘허탄함’(KJV)이나 ‘사악함’(NASB)이라는 뜻이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을 하지만, 악한 사람은 악한 말을 한다. 주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악인은 남을 저주하고 속이고 포학하고 해치고 헛되고 사악한 말을 한다.

[8-11절]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시편에서 성도는 ‘무죄한 자’ ‘외로운 자’ ‘가련한 자’ ‘가난한 자’ ‘겸손한 자’ 등으로 묘사된다. 악인은 이런 성도를 해치려 한다. 악인은 한적한 곳에 앉으며 은밀한 곳에서 성도를 엿본다. 그는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같이 은밀한 곳에 엎드린다. 악인이 공공연히 악을 행치 못하고 은밀히 하는 것은 양심 때문일 것이다. 악인은 또 의인을 향해 강포하다. ‘강포’라는 원어(아춤 םוּצ������)는 ‘강한 수족(手足)’이라는 뜻이다. 악인은 폭력적이다. 세상에서 의인들은 핍박과 고난을 당한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다(딤후 3:12).

악인은 또 무신론적이다.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사고 때문에 악을 담대히 행한다. 시편 14:1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하였다.

[12-15절]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악인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하나님이 감찰치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실상 그는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잔해와 원한을 다 보셨고 감찰하셨다. ‘원한’이라는 원어(카아스)는 ‘괴롭힘, 분노’ 등의 뜻이다. 하나님은 악인이 무시한다고 무시를 당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오히려 모든 일을 다 감찰하시고 판단하시며 그 손으로 악인의 악행에 대해 갚으신다.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은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근본 진리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징벌하심으로 성도를 도우시고 돌보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자(신 10:18)이시며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시 68:5)이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고 선하게 살지만 이 세상에서 악한 자 때문에 핍박을 당하여 외롭고 가련하기까지 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그러므로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라고 말한다. 기도는 믿음의 자연스런 표현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고 손을 드시고 가난한 자를 잊지 마시고 악인에게 합당한 징벌을 내리시기를 구하였다.

[16-18절]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 . . .

시편 저자는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왕, 곧 세상의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심판자이시다. 그는 성도의 호소를 들으신다. 17절의 ‘겸손한 자’라는 원어(아나임)는 ‘가난한 자, 핍박당하는 자’라는 뜻으로 성도 자신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핍박당하는 성도의 간구를 들으신다. 또 그는 성도의 마음을 준비시키신다. 그는 성도가 악을 버리고 의와 선에 굳게 서도록 준비시키신다. 그는 특히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자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신다. 하나님을 모르고 부도덕한 이방인들은 그의 땅 곧 이 세상으로부터 멸망을 당할 것이다(16절). 악인은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성밖에 있을 것이다(계 21:27; 22:15).

시편 1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은 악하다. 세상 사람들은 교만하여 순진한 자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이익을 탐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부정한다. 그들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학이 가득하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현실을 바로 보고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세상에서 성도들은 고통을 당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 그들은 가련한 자(2, 9절), 외로운 자(9, 10, 14절), 가난한 자(12절), 겸손한 자(17절)라고 표현된다. 악한 세상은 성도를 미워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하였다(딤후 3:12).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시며 통치자시요 심판자이시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온 세상을 홀로 통치하신다. 16절,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보시고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신다.

넷째로,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아뢰어야 한다. 시편에는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 특히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과 보응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다. 12절,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14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제목
서론  
1편: 복 있는 사람  
2편: 아들에게 입맞추라  
3편: 곤경 중에 부르짖음  
4편: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평안  
5편: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심  
6편: 눈물의 탄식을 들으심  
7편: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심  
8편: 사람을 존귀케 하심  
9편: 공의로 심판하심  
10편: 악인에 대한 심판을 호소함  
11편: 하나님께서 인생을 감찰하심  
12편: 거짓된 세상에서 지키심  
13편: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림  
14편: 어리석고 부패된 인생  
15편: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자  
16편: 하나님은 나의 기업  
17편: 정직한 부르짖음  
18편: 나의 힘과 구원이신 하나님  
19편: 하나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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