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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1-10절, 예레미야를 부르심

[1-3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 . . .

예레미야는 남방 유다 나라 멸망 시기에 사역했던 선지자이었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이었다. 그는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이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주전 627년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임하였다. 그 해 5월에 예루살렘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예레미야의 선지자 사역 기간은 약 41년간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므로 선지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자는 선지자가 될 수 없다. 그 말씀이 구약성경이 되었다. 오늘날, 목사나 설교자는 선지자가 아니지만, 선지자적 성격을 가진다. 설교자는 성경에 정통할 때 참 설교자가 된다. 참 설교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지 않고 성경의 교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럴 때 그는 권위를 가진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은 선지자적 권위를 가진다.

[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 . .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드신 자이시다. 부모는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단지 낳는 것뿐이다. 사람의 육신도, 영혼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로 쓰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어머니의 복 중에 지으시기 전에 그를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과 계획 속에서 그를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모든 사람을 아셨다. 에베소서 1:4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그를 아셨고 그를 구별하셨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으로 된 것이었다. 예레미야의 선지자직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

오늘날 설교자의 근원도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6-8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출 4: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안 자들을 부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선지자의 사역이 무엇임을 지시해주셨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누구에게든지, 무엇이든지 전해야 하였다. 그는 누구에게든지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시는 자에게 가서 전해야 하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전해야 했다. 그것이 선지자의 임무이며 오늘날 설교자의 임무이다.

둘째로, 예레미야는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동행자, 그의 후원자, 그의 보호자, 그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늘날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고 받았다면, 그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 . . .

여호와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의 입에 대시며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셋째로, 선지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오늘날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만을 충실하게 전해야 한다.

넷째로, 예레미야는 파괴하고 건설하는 일을 해야 했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것은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사역이다. 건설하고 심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고 구원하고 회복시키고 의와 선을 행하도록 권면하고 장려하는 사역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문은 설교자의 자격에 대해 증거한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다. 거기에 설교의 권위가 있고 또 설교자의 권위가 있다. 또 사람편에서 설교자는 성경에 정통한 자이어야 한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이 참 설교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른 목사와 설교자는 성경적 교훈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이다. 거기에 설교와 설교자의 권위가 있다.

둘째로, 본문은 설교자의 임무에 대해 증거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전해야 한다. 성경적 설교는 설교자의 생명이요 설교자의 권위요 설교자의 영광이다. 사도행전 20:20-21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 없이 전하여 가르쳤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다.

또 설교자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 설교자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는 악을 책망치 못하고 악과 타협하게 되고 설교 내용을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가감(加減)하게 될 것이다.

또 설교자는 파괴하고 건설해야 한다. 무엇을 파괴하는가? 사람들의 죄악된 요소들, 성도들의 부족한 점들을 지적하고 파괴해야 한다. 무엇을 건설하는가? 그는 성도들에게 꼭 있어야 할 덕들, 곧 경건과 거룩과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의 덕을 건립해야 한다.

셋째로, 본문은 교인들의 의무를 보인다. 참된 설교자가 하나님의 종이며 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교인들의 의무는 분명하다. 그들은 참된 설교자를 영접해야 한다. 마태복음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교인들은 성경적 설교를 하는 목사를 사람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깨닫고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성경적 설교를 거절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11-19절, 두 가지 환상

본문은 두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건이다.

[11-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 . .

여호와의 말씀이 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첫 번째 환상은 살구나무의 환상이었다. ‘살구나무’라는 원어(솨케드)는 ‘지킨다’는 히브리어(솨카드 혹은 쇼케드 [분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신의 말을 지키셔서 그대로 이루실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살구나무 가지를 보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는 자이시다. 말라기 3:6에서 그는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여호수아 21:45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증거하였다. 또 여호수아 23:14에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증거하기를,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24:35에 보면, 주 예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23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라고 권면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것을 굳게 믿자.

[13-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 . .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두 번째 환상은 끓는 가마의 환상이었다. 그 끓는 가마는 그 면이 북쪽에서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북방 나라들을 불러 유다 성읍들을 치게 하실 일을 미리 보이신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에 대한 환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요한계시록 2:23에 보면, 부활하신 주께서는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버리고 오직 선을 행하자.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고 패역의 죄를 범하지 말자.

[17-19절]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사명 완수를 명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불충성이고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 충성이다. 선지자나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충성하려면 주의 종들은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유다 땅과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다. 또 그들이 그를 치나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여 그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 선지자와 설교자에게 고난이 있고 그를 치는 자들이 있으나, 그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같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4:1-5,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私慾)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많은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견고케 하셨고 그를 도우시고 지키셔서 승리케 하셨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14-18에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간증하였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많은 해를 주었고 그의 말을 대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자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지식과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굳게 믿자.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 . .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고 패역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충성하자.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힘있게 전파되어야 한다. 마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른 말씀을 전하며 바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전하는 자편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견고케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승리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자.

제목
서론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2장: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름  
3장: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4장: 임박한 심판  
5장: 백성들의 죄악상  
6장: 북방에서 파멸이 닥침  
7장: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  
8장: 이스라엘의 완고함  
9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함  
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12장: 악한 자의 형통을 보고 피곤치 말라  
13장: 이스라엘의 교만을 낮추실 것  
14장: 가뭄 재앙을 예언함  
15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9장: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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