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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찬양'하는 세상이 오나


[김대중, "김정은을 '찬양'하는 세상이 오나," 조선일보, 2018. 11. 20, A34쪽; 고문.]

지난 일요일 서울 광화문에서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가 김정은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를 갖고 연설회를 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김정은 환영' 엽서를 쓰게 한 단체도 나왔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떳떳하게(?) 김정은을 찬양하는 행사는 처음인 것 같다. 한마디로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는 느낌이었다. 한두 달 전 서울 시청 건물에 김정은의 대형 사진이 내걸렸을 때의 소감 '드디어 올 게 오는구나'와 같은 맥락이지만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빨리 달라진다는 허탈감은 더 심했다.

하긴 우리 쪽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감격해 어쩔 줄 몰라 했을 때, 남북 공동성명에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명기했을 때 이런 종류의 친북 행사가 있으리란 것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 하지만 북쪽의 환영 행사와 서울의 환영 행사는 그 질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기에 김정은의 서울 방문이 그리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유보적 관점도 있었다.

김정은이 서울에 온다고 했을 때 그가 각오해야 하는 것은 한국 보수 단체나 보수층 시민의 반대다. 단 한 명의 반대도, 단 한 건의 이탈도 허용하지 않는 100% 찬성과 환영 일색의 관제 행사에 젖어온 김정은이 서울의 반대 데모를 과연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관심사다. 서울에서는 북한처럼 새벽에 일어나 별 보고 거리 환영에 나가는 관제 데모를 기대할 수 없다. 똑같은 한복 입기, 깃발 흔들기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

지금 김정은의 답방 건(件)은 18년 전 김대중 대통령(DJ)의 평양 방문 때와 그 진척 과정과 내용에 있어 아주 닮았다. 2001년 6월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DJ 대통령은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성사시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그 회담을 정례화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김정일의 답방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DJ는 2001년 6~7월 한 달 사이에 무려 다섯 번이나 김의 답방을 거론하며 여론 조성에 힘썼다. 당시 평양 방송은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시민 3분의 1이 환영나왔으니 답방시에는 그에 걸맞은 300만명이 환영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는가 하면, 그의 답방을 앞두고 남한에서 일고 있는 6·25 사과 요구와 답방 반대 움직임을 당장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DJ는 한국 언론을 통한 답방 무드 조성에 주목했다. 그래서 보수층이 주(主)독자였던 조선일보를 설득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필자를 청와대 공관의 저녁식사에 불렀다. 배석자 없는 단독 회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대통령은 조선일보가 김정일의 서울 방문을 환영한다는 논지를 펴줄 것을 요청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다양성 있는 민주 사회인 만큼 김정일을 환영하는 신문도 있고 반대하는 신문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며 대통령의 요청을 에둘러 거절했다. 그러나 DJ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신문이 반대하는 것은 몰라도 주독자층이 보수 계층인 조선일보가 그의 답방을 환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신문이 반대하는 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조선일보만은 찬성해 줬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조선일보는 DJ의 요청을 신문에 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의 방한에 즈음해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 1·21 청와대 습격 사건, KAL기 폭파, 울진 공비 사건 등 분단 이후 벌어진 여러 사건에 대해 한국 국민에 해명 내지 사과를 해줄 것 등을 요구하는 글들을 여기저기 실었다. DJ 측근으로부터 반응이 왔다. - "그게 오지 말라는 소리지 오라는 소리냐?" 그 뒤 조선일보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혹독한 세무조사를 받았고 발행인이 구속되는 사태를 겪었다.

여기에 이것을 소개하는 것은 적어도 DJ는 반대자들을 만나고 설득하고자 하는 소통의 리더십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또 김정은이 과연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 논조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방문할 여유와 배포와 자세가 돼 있는지를 시험하고 싶어서다. 하긴 서울의 반대 시위가 껄끄러워서인지 그를 한라산 꼭대기로 데려가려는 시도들이 들먹여지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불러오려는 문 정권의 꼼수도 처량해 보인다. '환영'과 '칭송'은 별개의 것이다. 우리는 김정은이 서울에 오더라도 그것을 철저히 사무적·외교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9/20181119035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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