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섭, "타이완에 판정패한 ‘K방역’," 조선일보, 2020. 9. 8, A34쪽.]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국과 국교를 맺은 전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는 공식 자리에 등장해선 안 되는 외교적 금기다. 이 금기가 지난주 주요 국제 뉴스 중심부에 등장했다.


체코 국가 서열 2위 밀로시 비스트르칠 상원 의장이 공식 수교국 중국의 경고를 일축하고 8월 30일부터 5박 6일간 대만을 방문하면서 두 나라 국기가 나란히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그가 대만 입법원 연설에서 중국어로 “나는 대만인이다”라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을 때도 양국 국기 마스크를 쓴 채였다.


이번 방문을 통해 대만은 유엔 총회마저 비대면으로 열 정도로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정상(正常)적인 정상(頂上) 외교가 가능한 모범 방역 국가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외교 사절임에도 불구하고 체류 기간 전원에게 두 차례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할 정도로 방역에 철저했다.


대만은 작년 말 우한에서 폐렴 환자가 속출할 때부터 우한발 여행 제한 조치, 고위험군 여행객 격리, 정부 주도의 안정적인 마스크 공급 체계 구축 등 다른 나라들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신속한 행정에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도 접목했다. 대만 행정원이 올해 1월 초 코로나 박멸을 위해 IT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방역·자가 격리·진료·투약 등 절차에 응용한 게 대표적이다.


총확진자 494명(완치 475명 포함), 사망 7명이라는 최저 수준 발병세를 자랑하는 대만은 한국의 ‘K방역’처럼 ‘타이완 모델(Taiwan Model)’이라는 이름으로 자국 방역 정책을 세계에 홍보한다. 나란히 잘나가던 ‘K방역’과 ‘타이완 모델’의 명암은 요즘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봉쇄 수준의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타이완 모델’은 미·중(美中) 관계 악화라는 찬스까지 활용하며 국력 신장을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달 미·대만 단교 이래 미 정부 최고위급 인사로 방문했던 앨릭스 에이자 보건부 장관이 “대만의 최고 수준 의료 지식을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한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한국과 대만은 코로나 발병국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올해 1월 첫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국력을 총동원해 방역 작전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유행 속에 방역에 성공했다는 자부심도 비슷했다. 하지만 여덟 달이 지난 지금, 국토 면적은 한국의 36%, 인구는 46%인 대만의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한국의 2.3%, 사망자 숫자는 2% 수준이다. 타이완 모델이 승자라는 걸 방증한다. 판정패한 ‘K방역’은 이제 ‘타이완 모델‘을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해 대비해야 할 신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