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냉전 2.0’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꿈꾸는 대국굴기를 노골화한다.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매킨더의 이론과 해양을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마한의 이론을 동시에 차용한 ‘일대일로 전략’으로 패권 도전장을 냈다. 중국은 경제·기술·군사·외교 모든 면에서 공세적이다. 중국의 아시아 지배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미국은 강력히 대응하기 시작했다. 무역 보복 차원을 넘어 중국의 번영을 가져왔던 글로벌 경제 사슬에서 중국을 ‘디커플링(배제)’하려 한다. 특히 반도체 공급 차단에서 보듯 중국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품 공급을 차단해 기술 도전을 싹부터 자르려 한다. 군사적 압박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영해로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함들은 자유항행 작전을 강화하고 군사기지화하고 있는 산호초들에 접근한다. 대만 근처에서 중국이 대대적인 해군 훈련을 감행하자, 미국의 이지스함은 대만해협을 거침없이 통과한다.


중국은 대함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수한다. 일촉즉발의 우발적 군사 충돌이 우려된다. 만일 군사충돌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러일전쟁, 한국전쟁에 이어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의 격전장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미·중 냉전은 우리에게 한국전쟁 이래 가장 큰 시련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강 건너 불 보듯 북한에만 올인한다. 정부와 자주파 인사들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한미 동맹은 냉전 동맹이며 이를 해소하여 남북 평화 체제를 이루고 다자안보로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다자안보이지 결국 동맹 대신 중국 주도 질서를 수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동맹파도 있다. 국민들 다수는 남북 관계 맥락에서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중 대결에 있어서 순수 동맹파는 소수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어느 정도 미·중 사이의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다. 과거 보수 정권도 일정 부분 미·중 사이 균형을 취하고자 했다. 어느 편도 아닌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자는 중견국 외교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고 미·중 사이에서 사안별로 우리 국익을 반영하여 입장을 정하자는 생각이 솔로몬 지혜인 것처럼 제기된다.


균형 외교나 중견국 외교가 가능할까? 우리가 위협에 처했을 때 연대한 중견국들은 우리를 도와줄까? 미·중 사이에서 우리와 연대할 중견국이 있기는 할까? 당장 중국의 강력하고 거센 패권 도전에 직면하여 우리보다 훨씬 국력이 강한 일본이나 인도도 균형 외교를 표방하지 않고 미국과 전략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미소 냉전 경험을 본다면, 사안별로 우리 입장을 정하는 방법도 쉽지 않다. 균형 외교를 보면서, 중국은 이미 한국을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깨는 가장 약한 고리로 생각하고 공략 중이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하면 우리에게 좋을까? 우리 역사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최악의 지정학적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준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공히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고 침략하고 복속하고 지배했다. 20세기 중 러시아의 야심으로 러일전쟁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주변 강대국이 지역 패권을 추구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70년 가까이 우리는 역사상 처음 중·일·러를 잊고 살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단군 이래 최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바로 한미 동맹과 미국 주도 국제 질서가 가져온 지역의 안정적 균형 덕분이다. 대한민국 국익은 지역의 안정적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미국의 국익도 전통적으로 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막는 것이다. 일본, 러시아를 막았고 이제 중국을 막고자 한다.


일본, 인도, 호주 등 지역 주요국 대부분 대중 경제 의존이 매우 높지만 중국의 아시아 지배를 좌시하지 않고 미국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지역 패권 등장을 막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 사활적 이익이 된다.


미·중 냉전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전략적 입지는 상승할 수 있다. 주력 산업에서 중국에게 추월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 조치로 중국 제품에 대한 국제적 기피상황이 초래되면서 LG화학이 중국을 제치고 자동차 배터리 분야 세계 1위로 부상했고 삼성전자는 어렵던 스마트폰 1위를 지켰고, 화웨이에게 밀리던 5G 분야에서 대규모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미래 세계경제를 좌우할 디지털플랫폼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한국은 얻었다. 이 기회를 살린다면, 대통령이 두 번 다시 중국에서 혼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