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유럽 집 정책, ‘굼벵이’ 인 이유," 조선일보, 2020. 9. 22, A34쪽.]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달 ‘집값 잡기’ 대책을 내놨다. 매년 30만호의 새집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존슨 총리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권한을 사실상 없애겠다고 했다. 지자체들이 관내 유지들의 이해관계에 끌려다니는 통에 새집을 지을 부지 확보가 더디다고 봤기 때문이다.


집값 안정이라는 명분이 있는 조치지만 존슨 총리는 42개월이라는 시간을 예고했다. 중앙정부가 42개월 후 도시계획 권한을 틀어쥐겠다면서 그전에 지자체들이 관내를 성장 구역, 재개발 구역, 보호 구역 등 3가지로 나누면 존중하겠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혼란에 빠지거나 손해를 입는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준비 기간을 넉넉히 둔 것이다.


네덜란드는 주택담보대출 상한선을 낮출 때 ‘거북이걸음’을 했다. 2012년 네덜란드의 LTV(담보 대비 대출금 비율) 한도는 106%였다. 10억원짜리 집을 살 때 10억6000만원까지 빌려주는 것이니 너무 높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네덜란드 정부는 LTV 상한선을 낮췄다. 속도를 주목해야 한다. 2013년 105%, 2014년 104% 식으로 1년에 1%포인트씩 낮춰 2018년부터 100%를 유지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오랫동안 숙고하던 사람이 느닷없는 대출 장벽으로 뒤통수를 맞지 않도록 배려했다.


프랑스에서는 주택 소유자에게 물리는 재산세가 2008년과 비교해 2018년에 평균 35% 올랐다. 같은 집에 대한 재산세가 2008년에 100만원이었다면 2018년에 135만원이라는 것이다. 주택의 공시 가격을 높인 결과인데, 사실 10년간 35%의 변화가 급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물가 상승률보다는 제법 높기 때문에 납세자들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올렸다.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나은 주거생활을 위한 대국민 서비스여야 한다. 그래서 유럽처럼 굼뜨게 변화를 주는 게 당연하다. 대다수 평범한 이들에게는 집을 사거나, 팔거나, 짓는 건 인생을 통틀어 몇 차례만 겪는 굵직한 일이다. 되도록 멀리 내다보고 결정을 내리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그런 마음을 위정자는 당연히 헤아려야 한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도 충분한 예고 기간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최근 3년 사이 쏟아진 부동산 정책은 국민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라 학대 수단에 가깝다. 예고 없는 세금 폭탄이 여러 번 터졌다. 대출 규제는 ‘시계(視界) 제로’다. 정책이 급변침하는 사이 집값 안정도 멀어지고 있다. 언제 또 제도가 바뀔지 몰라 불안에 쫓겨 ‘패닉 바잉’을 하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언저리에 있다 보니 한국 정부의 정책은 외국에서도 유심히 지켜본다. 민주주의 체제의 경제 강국이 펴는 정책이라고 하기에는 폭압적인 조치들이 난무하고 있다. 나라가 품위를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