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남침 지원해 놓고 ‘평화 수호’ 위해 싸웠다는 시진핑," 조선일보, 2020. 10. 24, A31쪽.]


시진핑 주석이 23일 중국의 6·25 참전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평화 수호, 침략 반대의 기치를 들고 압록강을 건넜다”며 “북한과 손잡고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켰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지켰다”고도 했다. 북한의 남침을 지원해 한반도를 피로 물들여 놓고 ‘평화 수호’라는 것이다. 중국은 70년 전 한국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날(10월 25일)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 기념일’이라고 한다.


시진핑은 6·25를 내전(內戰), 10·25를 항미원조로 구별했다. 6·25는 중국과는 무관한 일이고 항미원조는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6·25는 김일성이 마오쩌둥의 군사 지원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발발했다. 6·25 직전 중국이 북에 넘긴 조선인 사단 2개는 남침의 주력 부대였다. 중국의 6·25 책임이 분명한데도 모른 척했다. ‘항미’라고 하지만 유엔군 병력이 중국 땅을 밟은 적은 없다. 6·25 때 전사한 국군이 14만이다. 당시 마오쩌둥은 “위군(僞軍·국군)부터 타격하라”고 했다. 국군을 ‘약한 고리’로 봤다. 6·25 영웅 백선엽 장군은 “중공군과 싸운 기간이 거의 전부”라고 했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인데도 시진핑은 언급하지 않았다. ‘항미원조’라는 단어 자체에 한국의 존재가 없다.


미·중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시진핑은 미국을 겨냥해 “패권 행위는 막다른 길(死路)”이라며 ‘강력한 군대 건설’을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선 “피로 전투적 우정을 맺었다”고 했다. 지금 중국에선 ‘항미원조’를 띄우는 방송과 행사가 쏟아지고 있다. 김정은도 중국군 전사자 묘를 참배했다. 그런데 한국 안보의 보루인 한·미 동맹은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 주미 대사가 동맹 흔들기에 가담하는 상황이다. 70년 전 참극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