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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호를 기억하라

폭침당해 두 동강 난 천안함 같은 대한민국… 파면 팔수록 아수라장
책임지고 구하겠다는 솔선수범, 살신성인의 ’한주호 리더십' 나와야

[정진홍,  "한주호를 기억하라,"   조선일보, 2021. 3. 31, A35쪽.]

# 11년 전 한 사나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한.주.호. 당시 특수전여단(UDT/SEAL) 소속의 대한민국 해군 준위였다. 북한 어뢰에 폭침당한 천안함에 갇힌 아들 같은 수병들을 구하겠다고 53세의 나이도 아랑곳 않고 얼음장 같은 서해에 몸을 던져 구출 작전을 펴던 그였지만 끝내 순국(殉國)하고 말았다. 마침 어제가 그의 11주기였다. 하지만 서울, 부산 등 재·보선 선거판에 묻혀서인지 아니면 이미 10년도 지난 일이니 잊혀도 그만이라는 얄팍한 세상인심 때문인지 그에 관한 변변한 추모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되새겨보고 우리가 나아갈 바에 대한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

#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경 백령도 근해에서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를 맞고 폭침됐다. 순식간에 두 동강 난 천안함에는 함장을 포함해 모두 104명의 승조원이 타고 있었다. 피격 직후 배 안에서 긴급 점호를 했을 때 점호 숫자는 58번에서 그쳤다. 나머지 승조원 46명은 피격당해 두 동강 나 버린 배의 함미 부분에 갇힌 채 차디찬 서해 바다의 어두운 해저로 곤두박질하듯 가라앉고 있었다.

# “내가 가야 안 되겠나.” 이 한마디와 함께 한주호 준위는 천안함에 갇힌 수병들을 구출하는 잠수조 차출에 자원했다. 주변에서 만류하자 “나이, 계급, 직책 따지면 군 생활 못 했다. 전우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해군에 입대해 35년을 근속한 후 퇴역을 1년 6개월 남짓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그는 아들뻘 되는 구조대원들과 함께 진짜 자식 같은 전우들을 구조하러 진해에서 백령도 해역으로 급히 날아갔다.

# 1975년 2월 수도공고 기계과를 졸업한 18세의 한주호는 진해 해군훈련소에 하사관 후보생으로 입소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5남매 가운데 둘째였던 그는 남겨진 가족들이 걱정돼 라면 한 그릇에 100원 하던 당시 교육생 월급인 1500원을 안 쓰고 모아서 집으로 부쳤다. 심지어 금요일 저녁에 외박이라도 허용되면 군용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 집에 올라가 ‘콩나물 배달’이라도 하며 가계를 돕다가 귀대하곤 했다. 그해 11월 교육을 마치고 해군하사관이 된 한주호는 이듬해 5월 UDT(수중파괴대)에 자원한다. 그리고 10년 만인 86년 UDT 교관이 돼 19년 6개월 동안 “지옥에서 살아오라”고 외치며 수많은 대원을 길러냈다. 그런 한주호 준위는 2009년 쉰두 살에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된 청해부대 1진에 자원했다. 물론 그는 당시 청해부대 내 최고령자였지만 해적 공격 시 솔선해서 그가 직접 제작한 선박 침투용 사다리를 타고 해적선에 올라 모두 7차례에 걸쳐 해적들을 소탕하고 퇴치했다.

# 2010년 3월 28일. 살아있는 UDT의 전설이었던 53세의 한주호 준위는 북한 어뢰에 폭침당한 천안함의 아들 같은 승조원들을 구출하려 차디찬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날 오후 6시경 헬기로 백령도 인근 해상 현장에 도착한 그는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2회 잠수 끝에 가라앉은 천안함에 부표를 다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도 2회에 걸쳐 잠수했다. 하루 잠수했으면 다음 날 하루를 쉬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셋째 날인 30일 오후 2시 40분. 한 준위는 “오늘 완전히 다 마치겠다. 함수 객실을 전부 탐색하고 나오겠다. 국민과 실종 장병 가족들 모두가 애태우고 있으니 내가 책임지고 해내겠다”는 각오를 남긴 채 다시 바다에 뛰어들었다. 연 사흘에 걸쳐 다섯 번째 목숨을 건 잠수였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한주호 준위는 당시 김형진·김정호 상사와 함께 3인 1조로 잠수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속은 얼음장 그 자체였다. 물이 너무 차서 손마디가 시리다 못해 손이 굳고 호흡이 가빠왔다. 한 준위는 두 김 상사에게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든 채 “상승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자신만 거기 남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한 준위는 이날 오후 3시 30분께 의식 불명 상태로 인근에 있던 미군 함정으로 이송돼 ‘감압 챔버’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지옥에서 살아오라!”고 포효하던 UDT의 전설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순직(殉職)한 것이 아니라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하며 나라 전체가 혼돈 속에 휘청거릴 때 자기 한 몸을 던져 대한민국이 왜, 어떤 이유로 존재하는지를 온 세상에 외치듯 순국(殉國)한 것이다.

#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나라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폭침당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대통령을 향해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의 입을 통해 ‘미국산 앵무새’라는 비아냥을 그치질 않는다. 심지어 당시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당한 것이 아니라 미군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고 떠들던 이가 지금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라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념한다는 것은 단지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제대로 살아내자는 각오가 아니면 안 된다. 고 한주호 준위의 생전 사진을 보노라니 그의 사나이다운 담백한 눈빛, 그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전율하듯 포효하는 “지옥에서 살아오라!”는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UDT 대원과 천안함 수병들에게만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코로나와 그보다 더한 실정(失政)으로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향한 그의 외침이다. 파면 팔수록 아수라장인 이 나라에 그래도 한 가닥 남은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의당 고 한주호 준위가 보였던 솔선수범, 살신성인의 자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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