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인들의 분열
2006.08.29 11:40
[이신화, “한국 지식인들의 분열, ” 2006. 7. 15, 조선일보, A35쪽;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얼마 전 어떤 모임에 나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경제 원조의 대가가 핵이나 미사일 위협으로 돌아온다면 더 이상의 지원은 재고(再考)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당신이 정치학자가 맞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근본 원인인 미국의 대북 강경 압박정책은 제쳐두고 북한 행동만 비난하는 것은 수구 냉전이고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며, 한반도 전쟁 위협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무고한 북한 주민들을 더 큰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안도 없이 남북 화해 협력을 비판하는 '감정적 대결주의'에 휩싸일 게 아니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동시에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한 중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북한은 600억 원에 이른다는 일곱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됐는데도 그 사람들은 “인도적 구호나 경협을 목적으로 한 우리의 지원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런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게 있다.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대북 지원과 남북대화를 계속해야 하는가'라고. 이런 대북정책이 과연 선군 폐쇄 억압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민족 공조와 자주를 강조하다 동맹을 잃고 난 뒤 과연 북한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해줄까? 그런 물음도 던지고 싶다.
시선을 한반도 주변 정세로 돌리면 마음은 더욱 답답해진다. 우선 이번 사태를 군사력 증강 기회로 활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일본 우파의 ‘선제 공격론'은 우리 대통령이 뭐라고 했건 유감이다. 선제 공격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한․미․일이 모처럼만에 어설프게나마 같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무산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 망언사태'에 남북한이 공조(?)해서 강력하게 비난을 퍼붓는 격이 되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대책 마련에 혼선을 빚고 말았다.
한편으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반대로 일본이 주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 채택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원하는 미국과 일본이 더욱 긴밀한 전략적 공조관계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기대를 걸어 온 중국의 지렛대론은 실효가 없어 보인다. 연이은 북·중 양자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 애타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무력 충돌을 마지막 카드로 내세운다면 그 결과는 북·미·일만의 결투가 아닌 북한의 대남 전면 보복이 될 가능성이 우리 정부의 계산대엔 오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은 ‘북한이 설마 우리를 향해 미사일을 쏠까'라는 생각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겨냥해서 쏜 것이 아니다"라면서 북한에 대한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에는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우리 집권층의 태도는 그런 국민들의 '안보 내성(耐性)'과 '안보 오산(誤算)'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안보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더 우려되는 것은 한시적으로 권력 위임을 받은 집권층의 생각보다 이 사회의 담론을 계속하여 주도해 나갈 지식인층의 분열이다. 그래서 “1998년의 대포동 1호 미사일, 2002년의 서해교전과 비교할 때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은 아니다" "위협을 통한 자위행동이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이를 안보 논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북한 이해론'이나 '내재적 접근론'을 견지하는 학자들의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현실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진단해야 하는 안보학자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안타깝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 나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경제 원조의 대가가 핵이나 미사일 위협으로 돌아온다면 더 이상의 지원은 재고(再考)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당신이 정치학자가 맞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근본 원인인 미국의 대북 강경 압박정책은 제쳐두고 북한 행동만 비난하는 것은 수구 냉전이고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며, 한반도 전쟁 위협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무고한 북한 주민들을 더 큰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안도 없이 남북 화해 협력을 비판하는 '감정적 대결주의'에 휩싸일 게 아니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동시에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한 중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북한은 600억 원에 이른다는 일곱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됐는데도 그 사람들은 “인도적 구호나 경협을 목적으로 한 우리의 지원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런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게 있다.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대북 지원과 남북대화를 계속해야 하는가'라고. 이런 대북정책이 과연 선군 폐쇄 억압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민족 공조와 자주를 강조하다 동맹을 잃고 난 뒤 과연 북한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해줄까? 그런 물음도 던지고 싶다.
시선을 한반도 주변 정세로 돌리면 마음은 더욱 답답해진다. 우선 이번 사태를 군사력 증강 기회로 활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일본 우파의 ‘선제 공격론'은 우리 대통령이 뭐라고 했건 유감이다. 선제 공격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한․미․일이 모처럼만에 어설프게나마 같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무산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 망언사태'에 남북한이 공조(?)해서 강력하게 비난을 퍼붓는 격이 되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대책 마련에 혼선을 빚고 말았다.
한편으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반대로 일본이 주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 채택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원하는 미국과 일본이 더욱 긴밀한 전략적 공조관계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기대를 걸어 온 중국의 지렛대론은 실효가 없어 보인다. 연이은 북·중 양자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 애타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무력 충돌을 마지막 카드로 내세운다면 그 결과는 북·미·일만의 결투가 아닌 북한의 대남 전면 보복이 될 가능성이 우리 정부의 계산대엔 오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은 ‘북한이 설마 우리를 향해 미사일을 쏠까'라는 생각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겨냥해서 쏜 것이 아니다"라면서 북한에 대한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에는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우리 집권층의 태도는 그런 국민들의 '안보 내성(耐性)'과 '안보 오산(誤算)'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안보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더 우려되는 것은 한시적으로 권력 위임을 받은 집권층의 생각보다 이 사회의 담론을 계속하여 주도해 나갈 지식인층의 분열이다. 그래서 “1998년의 대포동 1호 미사일, 2002년의 서해교전과 비교할 때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은 아니다" "위협을 통한 자위행동이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이를 안보 논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북한 이해론'이나 '내재적 접근론'을 견지하는 학자들의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현실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진단해야 하는 안보학자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