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의 덫’과 ‘주체의 올가미’
2006.08.29 11:45
[강천석, '자주의 덫'과 '주체의 올가미,' 조선일보, 2006. 7. 28, A34쪽.]
북한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고 바다에 처박힌 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 미사일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일으켰던 잔물결이 지금 키 큰 해일이 되어 한반도의 남북으로 밀려들고 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대북(對北)결의안 1695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3년 만에 UN이 다시 북한문제로 움직인 것이다. 실질적 제재 조치가 포함된 대북 결의안으로선 6·25 이후 56년 만이다. 북한의 혈맹(血盟)인 중국과 러시아는 형제국 북한에 등을 돌리고 미사일 발사 규탄에 가세했다. 미국과 일본은 결의안 추진 사실을 우방이라는 한국에 귀띔조차 해주지 않았다. 제 국민이 결딴날지도 모를 소식을 귀동냥도 못한 한국을 달래기는커녕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핀잔을 주는 게 오늘의 미국이다. 한미 동맹이 이렇게 허물어져버렸다. ‘주체(主體)의 나라' 북한과 '자주(自主)의 나라' 한국이 민족끼리 어깨동무한 채 고립의 구렁으로 함께 걸어 들어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한 금융과 무역 분야의 추가 제재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북한 추가 제재는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을 불러올 뿐'이라는 한국 대통령 말씀은 그들 귀엔 문지방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의 주머니는 앞으로 더 말라갈 것이다. 북한 제재의 여파(餘波)는 한국 상품의 수출 부두까지 밀려와 부딪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수출품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필요한 전략물품으로 분류될 경우 엄격한 수출 제한을 받게 된다. 핵무기와 미사일 부품이 아닌 철강․알루미늄․전기기기․비료까지 여기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출금지 규정을 위반할 경우의 처벌은 가혹하다. 미국과 일본의 부라린 눈을 쳐다봐야 할 한국기업으로선 지뢰밭을 걷게 되는 셈이다. '주체'와 '자주'라는 남북의 이념이 합작(合作)해 불러들인 외세(外勢)의 간섭이니 할 말도 없다.
‘주체의 나라'에 끌려 다니는 '자주의 나라' 가 겪는 험한 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쌀과 비료 지원을 늦춘 것을 걸고넘어지면서 이산가족 상봉, 8․15 화상 상봉, 금강산 면회소 건설을 모두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과 남측 대중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있는데도 남측이 대북 제재 소동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인도주의적 사업을 팔아먹는 반민족적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족끼리'로 분칠한 노선이 어차피 다다르게 돼 있는 '민족따로'의 종착역(終着驛)이라고 받아넘기기에는 너무나 가슴 메는 비극이다.
대통령 곁의 청와대 안보정책 수석비서관은 “북한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북핵 협상을 끌어내기 위해 벌인 '고도의 정치적 압박 행위'일 뿐"이라면서 미사일 관련 일부 신문보도가 '국적(國籍)과 국익(國益)을 저버린 것'이라고 엄중 규탄했다. 도대체 자주(自主)의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대통령 생각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은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지도 못했고 그들을 협상테이블로 불러오지도 못했다. 오히려 '주체의 나라'와 '자주의 나라' 옆 바다에 떨어져 두 나라의 정치․경제․외교적 고립을 불러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자주'와 '평양의 주체'가 어디까지 같고 어디서부터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오늘의 세계는 ‘주체'와 '자주'의 키워드로 풀 수 있는 흑백의 세계가 아니다. '주체'와 '자주'에 갇힌 눈은 색맹(色盲)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눈으론 대결에서 협력으로, 협력에서 다시 대결로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해가는 세계의 합종연횡(合從連橫)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주체의 나라'가 안보리에서 혈맹 중국에 따귀를 맞고, '자주의 나라'가 우방국 미국과 일본에 따돌림을 당한 것도 결국은 '주체'와 '자주'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균형자론 파문' '주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시비' '협력적 자주국방론' '주한미군의 전시 작전권 회수 캠페인' 등 이 정권 3년 반 동안의 안보 이슈 시리즈의 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자주밖에 보이는 게 없는 외눈박이 세계 읽기의 협소함과 위태로움이다.
남과 북의 지도자는 한반도의 남북을 향해 ‘자주의 덫'과 '주체의 올가미'를 어서 벗어 던지라는 경고의 천둥소리를 듣기는 듣고 있는 것일까.
북한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고 바다에 처박힌 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 미사일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일으켰던 잔물결이 지금 키 큰 해일이 되어 한반도의 남북으로 밀려들고 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대북(對北)결의안 1695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3년 만에 UN이 다시 북한문제로 움직인 것이다. 실질적 제재 조치가 포함된 대북 결의안으로선 6·25 이후 56년 만이다. 북한의 혈맹(血盟)인 중국과 러시아는 형제국 북한에 등을 돌리고 미사일 발사 규탄에 가세했다. 미국과 일본은 결의안 추진 사실을 우방이라는 한국에 귀띔조차 해주지 않았다. 제 국민이 결딴날지도 모를 소식을 귀동냥도 못한 한국을 달래기는커녕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핀잔을 주는 게 오늘의 미국이다. 한미 동맹이 이렇게 허물어져버렸다. ‘주체(主體)의 나라' 북한과 '자주(自主)의 나라' 한국이 민족끼리 어깨동무한 채 고립의 구렁으로 함께 걸어 들어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한 금융과 무역 분야의 추가 제재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북한 추가 제재는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을 불러올 뿐'이라는 한국 대통령 말씀은 그들 귀엔 문지방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의 주머니는 앞으로 더 말라갈 것이다. 북한 제재의 여파(餘波)는 한국 상품의 수출 부두까지 밀려와 부딪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수출품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필요한 전략물품으로 분류될 경우 엄격한 수출 제한을 받게 된다. 핵무기와 미사일 부품이 아닌 철강․알루미늄․전기기기․비료까지 여기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출금지 규정을 위반할 경우의 처벌은 가혹하다. 미국과 일본의 부라린 눈을 쳐다봐야 할 한국기업으로선 지뢰밭을 걷게 되는 셈이다. '주체'와 '자주'라는 남북의 이념이 합작(合作)해 불러들인 외세(外勢)의 간섭이니 할 말도 없다.
‘주체의 나라'에 끌려 다니는 '자주의 나라' 가 겪는 험한 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쌀과 비료 지원을 늦춘 것을 걸고넘어지면서 이산가족 상봉, 8․15 화상 상봉, 금강산 면회소 건설을 모두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과 남측 대중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있는데도 남측이 대북 제재 소동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인도주의적 사업을 팔아먹는 반민족적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족끼리'로 분칠한 노선이 어차피 다다르게 돼 있는 '민족따로'의 종착역(終着驛)이라고 받아넘기기에는 너무나 가슴 메는 비극이다.
대통령 곁의 청와대 안보정책 수석비서관은 “북한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북핵 협상을 끌어내기 위해 벌인 '고도의 정치적 압박 행위'일 뿐"이라면서 미사일 관련 일부 신문보도가 '국적(國籍)과 국익(國益)을 저버린 것'이라고 엄중 규탄했다. 도대체 자주(自主)의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대통령 생각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은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지도 못했고 그들을 협상테이블로 불러오지도 못했다. 오히려 '주체의 나라'와 '자주의 나라' 옆 바다에 떨어져 두 나라의 정치․경제․외교적 고립을 불러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자주'와 '평양의 주체'가 어디까지 같고 어디서부터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오늘의 세계는 ‘주체'와 '자주'의 키워드로 풀 수 있는 흑백의 세계가 아니다. '주체'와 '자주'에 갇힌 눈은 색맹(色盲)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눈으론 대결에서 협력으로, 협력에서 다시 대결로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해가는 세계의 합종연횡(合從連橫)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주체의 나라'가 안보리에서 혈맹 중국에 따귀를 맞고, '자주의 나라'가 우방국 미국과 일본에 따돌림을 당한 것도 결국은 '주체'와 '자주'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균형자론 파문' '주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시비' '협력적 자주국방론' '주한미군의 전시 작전권 회수 캠페인' 등 이 정권 3년 반 동안의 안보 이슈 시리즈의 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자주밖에 보이는 게 없는 외눈박이 세계 읽기의 협소함과 위태로움이다.
남과 북의 지도자는 한반도의 남북을 향해 ‘자주의 덫'과 '주체의 올가미'를 어서 벗어 던지라는 경고의 천둥소리를 듣기는 듣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