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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의 공동화․형해화를 우려한다

2007.11.13 11:55

관리자 조회 수:1064 추천:85

[김찬규 ,“NLL의 공동화․형해화를 우려한다,” 문화일보, 2007. 10. 09, 단국대 초빙교수․국제법.]
10월4일 평양에서 채택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 대신,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11월 평양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열기로 했다는 규정(제3항)이 있다. 그리고 남북 양측은 해주지역 및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의 설치, 그리고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제5항)이 이 선언문에 들어 있다.
이같은 규정을 둔 10․4 평양선언이 NLL의 존속에 영향을 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NLL을 형해화시킬 것이라는 게 정답일 것 같다. 육상 군사분계선의 서쪽 끝인 한강 하구에서 시작해 서해 5도와 북한 연안의 중간에 그어진 NLL은 지금까지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으로서 한국 휴전체제의 일부가 돼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설사 민간 선박이라도 이 선을 넘어 해주항에 들어갈 수 없었고 또한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런데 평양선언이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으니 이것은 육상군사분계선에 대해 민간인의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실질적으로 NLL의 형해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와 관련해서는 항로대(帶) 등을 설정하여 통제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항로대를 지정하여 출입하는 민간 선박에 대해 그곳만 이용토록 요구하고 위반 선박을 단속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북한 선박이 이를 위반했을 때 과연 단속할 수 있으며, 단속할 수 있더라도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2004년 5월28일 남북한 간에 채택된 남북해운합의서 및 그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가 있다. 이 문건에는 쌍방이 남북 왕래 선박의 항로를 지정할 수 있다는 것과 ‘무기 또는 무기부품 수송’ 등 운항중 해서는 안될 행위 10가지가 적시되고 있다. 또 운항중인 선박이 이 금지를 위반했을 때 연안국 관헌은 그 선박을 정선시켜 승선․검색하여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부속합의서 제2조8). 그러나 위반 사실이 확인됐을 때 연안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기껏 그 선박에 대해  ‘주의 환기 및 시정 조치와 관할수역 밖으로 나가도록’ 하는 게 전부다(제2조9).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남한에서는 이같은 합의서 내용마저도 제대로 집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 영해를 통과한 북한 선박의 수는 22척이었는데, 이들 중 우리 해양경찰의 통신검색에 응한 선박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허용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빈번한 북한 선박의 위반행위에 대해 우리가 공권력을 발동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음으로, 공동어로수역이라는 것도 기존의 NLL을 공동화(空洞化)시키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다. 이 수역의 위치에 대해 한국은 NLL에 걸치게 하자고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NLL 바깥쪽, 다시 말해 우리 수역에 설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것이 설치되면 협력보다는 경쟁, 또 그 경쟁이 격화해서 어민들 간의 싸움으로 비화하고 어민 보호라는 구실 아래 군사력이 출동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해주직항로의 인정, 공동어로수역의 설정이 기존의 NLL을 형해화 내지 공동화시킨다는 데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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