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도쿄에서 일본 외무성이 후원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미국과 일본이 주창(主唱)하는 '인도·태평양 시대'의 전략을 논의하는 회의였다. 일본에서 제법 알려진 사회자가 이 지역 국가를 미국과의 밀접도에 따라 블루, 퍼플, 핑크, 레드의 4개 색깔로 분류해 논의하자고 했다. 그는 미국의 동맹국을 '블루 국가'로 정의했다. 일본·호주를 여기에 포함했다. 한국은 언급되지 않았다. 의아했다.
쉬는 시간에 그를 만나 "한국을 미국의 동맹국에 포함하지 않아 깜짝 놀랐다"고 말을 건넸다. 내심 "아차, 깜빡 잊어버렸다"는 대답을 기대했다. 그 순간 생각지 못했던 말이 돌아왔다. "일부러 한국을 블루 국가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미국보다) 중국에 더 가까워지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회의가 끝난 후 만난 저명한 일본인 학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일본에서는 한미 동맹 관계가 영속하기 어려우며, 위험에 처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매일 도쿄의 공기를 마시며 취재할 때 한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최근 자주 듣고 있다. 지난달 북핵 6자 회담 수석 대표를 지낸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전 외무성 차관 강연회에서도 한미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주한 미군 대폭 감축이나 철수가 기정사실로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미 관계에 대한 불신을 바닥에 깔고 있는 질문이었다. 같은 달 게이오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정세 토론회에서도 유사한 언급이 있었다.
일본은 한미 관계가 '레드 라인'을 넘는 순간 동북아의 안보 부담이 전부 자신들에게로 넘어올 가능성을 우려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한반도가 적화(赤化)돼 공산주의 체제와 직접 맞닥뜨릴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한미 관계 악화를 남의 일처럼 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주요 신문들이 지난 4일 '한미 연합 훈련 중지'를 1면 톱 기사로 보도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한일 관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일본의 시각이 반드시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와 남북 대화의 올바른 성공을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일본의 이런 분위기는 한번쯤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사시 한반도에 수 시간 내로 출격 가능한 미 공군·해군 주둔을 허용하는 나라에서 한미 동맹에 회의적인 시각이 굳어지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