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교가 교체, 어떻게 시작됐나
친일 교가 교체 작업은 지난 1월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이 광주광역시 의뢰로 '광주 친일 잔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광주 시내 중·고교 13곳과 대학교 4곳이 현제명·김동진·김성태·이흥렬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작사가나 작곡가 4명이 지은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후 10곳 넘는 중·고교가 교가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학교 중 6곳은 지난 4일 입학식 때 교가를 생략했다.
이어 2월엔 충북교육청이 '역사 바로 세우기 추진단'을 꾸려 도내(道內) 초·중·고교 469곳을 전수 조사한 뒤, "26개교가 친일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북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교가 교체를 권고할 예정이다.
다른 교육청들도 교가 교체 압박을 느끼는 곳이 많다. 전교조가 전국 곳곳에서 교가 교체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전교조 서울지부가 서울 지역 초·중·고교 113곳을 지목해 "친일 인사가 작사 또는 작곡한 교가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경기지부도 이틀 뒤 "(여러 학교에서) 친일 인사가 작곡·작사한 교가를 발견했다"는 성명을 내고, "학교 내 반민족·친일 잔재 청산에 교육청이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경기교육청 측은 "교가 교체를 우리가 강압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부산교육청 측도 "교가는 재학생뿐 아니라 동문회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교조 본부는 지난달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만나 '교육계 친일 잔재 청산 운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울산교육청, 충북교육청, 부산교육청은 교육청 예산으로 이 책(3권 세트 30만원)을 구입해 각 학교에 나눠줄 계획이다.
◇기준은 '친일인명사전'
문제는 '친일인명사전' 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한 가지만으로 '이 사람은 친일, 저 사람은 반일'이라고 100년 전 역사를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반민족 행위자도 들어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장면 전 총리처럼 삶의 한 단면만 보고 '친일'이라고 낙인찍기 힘든 이들이 더 많다. 을사늑약 때 '시일야방성대곡' 사설을 쓴 위암 장지연도 이 사전에 따르면 친일 인사다.
◇동문들 "왜 갑자기 고치나"
광주제일고 동문들은 교가 교체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총동창회장 출신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영일씨는 "우리 동문 4만명은 이흥렬 선생이 지은 교가를 자긍심을 갖고 불러왔다"면서 "전교조와 일부 역사학자들이 작곡가들을 친일로 몰아 교가까지 없애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
☞친일인명사전
‘친일 교가 교체’를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1991년 설립된 좌파 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든다. 이 사전에 오른 사람이 작 사·작곡한 교가는 청산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사전엔 총 4389명이 실려 있다.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반민족 행위자(688명)보다 여섯 배 많다. 6·25전쟁 때 북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오른 반면, 일부 친일 논란이 있는 좌파 인사는 빠진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발간 당시부터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