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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좌편향 교과서 기승 부릴 때 역사학계는 왜 잠잤나," 조선일보, 2008. 10. 10, A31쪽.]

한국사연구회, 동양사학회, 서양사학회를 비롯한 역사 관련 21개 학회는 8일 정부의 좌편향(左偏向)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방침이 "역사교육의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에 맡기라"고 주장했다.

지구상에 역사 교육을 역사학자들의 '자율'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 교육의 목적은 장래에 나라를 이끌고 갈 건전한 예비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 건전한 시민의 바탕은 제 나라 역사에 대한 균형 감각이다. 따라서 교육, 특히 역사 교육에 국가와 사회가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정(國定)과 검인정(檢認定) 제도라는 교과서 심의 권한이 국가에 부여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른들이 보는 일반 역사서는 '흑인과 인디언의 눈으로 본 미국사' '노동자의 눈으로 본 영국사' '조선족의 눈으로 본 중국사'처럼 소수(少數)의 시각에서 쓸 수 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만큼은 어느 나라에서든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이 생명이다. 따라서 소수의 시각을 배려하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線)이 있다. '남로당원이 겪은 해방 정국' 또는 '김일성 군대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을 교과서란 이름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좌편향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이 교과서는 2002년 검정 때 '내용 오류나 편향적 이론·시각·표현' 항목에서 10명의 검정위원 중 7명이 C, 3명이 B 등급을 줬다. 사실상 교과서로는 부적합 평가를 받은 것이다. 태어나선 안 될 교과서가 검정 제도의 허점으로 검정을 통과했고, 전교조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교육현장에서 교실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역사학계는 이런 탈선(脫線) 교과서가 검정을 버젓이 통과할 때도, 어린 학생들이 전국 교실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교과서를 배우는 동안에도 입도 뻥긋 한 적이 없다. 몇 개 학회는 오히려 "아무런 문제없다"며 탈선 교과서에 면죄부를 발급해 줬다. 이번 성명에 이름을 빌려준 학회와 역사학자들이 과연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꼼꼼히 읽어봤는지, 그리고 그 내용에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탈선 교과서를 비호하고 눈감아줬던 역사 관련 학회들이 이제 와서 "현행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은 필자나 역사학계의 엄밀한 검토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학자적 양심에 비춰봐도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학계와 학자들이 포퓰리즘에 흔들려서 혹은 학계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386세대의 입김에 휘둘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2세 교육을 망가뜨리는 데 앞장을 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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