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신(神)’ 앞에 남(南)도 엎드리자고?
2008.12.24 13:54
[류근일, “‘평양의 신(神)’ 앞에 남(南)도 엎드리자고?” 조선일보, 2008. 11. 25, A30.]
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또 통과시켰다. 우리 정부도 51개 제안국의 하나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 비하면 현격한 발전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결의안은 ‘북한 내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인권 침해자에 대한 독립적인 사법기관의 처벌’ 요구, 그리고 ‘외국인 납치 문제 해결’ 촉구 등을 담고 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러나, 그런 결의안을 백 번 통과시켜도 한국 사회 일각의 경우는 ‘쇠귀에 경 읽기’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 인권? 또 그 소리…’ ‘수구냉전 세력의 상투적인 선전전(戰)’이라는 식이다. 민주화 이후에 와서도 남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열을 내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일부 지식인들도, 일부 단체들도, 여야 ‘똑똑이'들도, 모두가 그저 ’남의 일‘이란 표정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별것 아닌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선 2006년 1월 25일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어떤 결의안을 채택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유럽 평의회는 그때 소련권 붕괴 15주년을 맞아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의 80여 년간에 걸친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일찍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나치스의 인권유린을 단죄한 것과 비견되는 것이었다. 결의안은 “공산주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범죄적인 행위를 통치구조에 내포(內包)시켰다”고 했다. 바로 개별적 집단적 학살, 집단수용소의 처형, 굶겨 죽이기, 강제 이주(移住), 고문, 노예노동, 소수민족 박해, 종교탄압, 양심․표현․언론․출판의 자유 박탈 등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유럽 평의회의 진단이었다. 청소년 동원, 선전선동, 세뇌교육, 병영화(兵營化), 개인숭배, 반대자 제거… 등 모든 점에서 양자는 똑같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계승한 유럽의 계몽사상이 그처럼, 볼셰비즘을 나치즘에 대한 것과 똑같은 강도로 규탄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유엔 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도 유럽 평의회의 그런 정신을 직선적으로 이어받는 것이다. 결의안 자체도 유럽 평의회가 많이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존엄한 우리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발했다. 나치스들도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존엄한 우리 체제' 운운하며 반발했을까? 존엄? 존엄이란 무엇인가? 수용소 군도(群島)의 '완전통제 구역'을 운영하는 것이 존엄하다는 뜻일까?
그러나 북한 당국자는 당사자인 만큼 그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의 일부도 북한이 신성시하는 개인숭배 체제에 대해 민간인들도 시비해선 안 된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 간의 ‘상호비방 금지’ 합의에 따라 남한의 시민사회도 김정일 폭정과 인권말살에 함구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외면하는, 그래서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경시하는 언동이기 때문이다.
남북 간의 원만한 대화를 위해 당국자들이 말을 신중히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도 북한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는 김정일을 비판해선 안 된다니, 그렇다면 예컨대 언론의 정당한 비판도 일괄 ‘비방’으로 몰아 금지시켜야 할 판인가? 그런 그들이 북한 관영매체가 대한민국 60년사를 일관되게 ‘사대매국’이라고 비방하는 데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북한 인권 운동가들도 대북 전단지 내용을 되도록 정제된 문구로 다듬을 필요는 있다. 그에 대한 당국의 우려와 자제 요청에도 그만한 고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의 헌법적 권리를 ‘고압가스 관리법’으로 제약하자는 일부의 발상은 ‘잔꾀’ 수준이다. 그러려면 아예 유엔이 ‘불가침의 김정일’을 건드리는 것도 ‘고압가스’로 막아 보시지….
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또 통과시켰다. 우리 정부도 51개 제안국의 하나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 비하면 현격한 발전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결의안은 ‘북한 내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인권 침해자에 대한 독립적인 사법기관의 처벌’ 요구, 그리고 ‘외국인 납치 문제 해결’ 촉구 등을 담고 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러나, 그런 결의안을 백 번 통과시켜도 한국 사회 일각의 경우는 ‘쇠귀에 경 읽기’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 인권? 또 그 소리…’ ‘수구냉전 세력의 상투적인 선전전(戰)’이라는 식이다. 민주화 이후에 와서도 남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열을 내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일부 지식인들도, 일부 단체들도, 여야 ‘똑똑이'들도, 모두가 그저 ’남의 일‘이란 표정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별것 아닌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선 2006년 1월 25일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어떤 결의안을 채택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유럽 평의회는 그때 소련권 붕괴 15주년을 맞아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의 80여 년간에 걸친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일찍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나치스의 인권유린을 단죄한 것과 비견되는 것이었다. 결의안은 “공산주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범죄적인 행위를 통치구조에 내포(內包)시켰다”고 했다. 바로 개별적 집단적 학살, 집단수용소의 처형, 굶겨 죽이기, 강제 이주(移住), 고문, 노예노동, 소수민족 박해, 종교탄압, 양심․표현․언론․출판의 자유 박탈 등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유럽 평의회의 진단이었다. 청소년 동원, 선전선동, 세뇌교육, 병영화(兵營化), 개인숭배, 반대자 제거… 등 모든 점에서 양자는 똑같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계승한 유럽의 계몽사상이 그처럼, 볼셰비즘을 나치즘에 대한 것과 똑같은 강도로 규탄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유엔 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도 유럽 평의회의 그런 정신을 직선적으로 이어받는 것이다. 결의안 자체도 유럽 평의회가 많이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존엄한 우리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발했다. 나치스들도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존엄한 우리 체제' 운운하며 반발했을까? 존엄? 존엄이란 무엇인가? 수용소 군도(群島)의 '완전통제 구역'을 운영하는 것이 존엄하다는 뜻일까?
그러나 북한 당국자는 당사자인 만큼 그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의 일부도 북한이 신성시하는 개인숭배 체제에 대해 민간인들도 시비해선 안 된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 간의 ‘상호비방 금지’ 합의에 따라 남한의 시민사회도 김정일 폭정과 인권말살에 함구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외면하는, 그래서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경시하는 언동이기 때문이다.
남북 간의 원만한 대화를 위해 당국자들이 말을 신중히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도 북한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는 김정일을 비판해선 안 된다니, 그렇다면 예컨대 언론의 정당한 비판도 일괄 ‘비방’으로 몰아 금지시켜야 할 판인가? 그런 그들이 북한 관영매체가 대한민국 60년사를 일관되게 ‘사대매국’이라고 비방하는 데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북한 인권 운동가들도 대북 전단지 내용을 되도록 정제된 문구로 다듬을 필요는 있다. 그에 대한 당국의 우려와 자제 요청에도 그만한 고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의 헌법적 권리를 ‘고압가스 관리법’으로 제약하자는 일부의 발상은 ‘잔꾀’ 수준이다. 그러려면 아예 유엔이 ‘불가침의 김정일’을 건드리는 것도 ‘고압가스’로 막아 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