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장사꾼들이여, 좌판을 접으라
2009.04.02 15:05
[이재교,"이념장사꾼들이여, 좌판을 접으라,” 조선일보, 2009. 2. 5, A26쪽; 인하대 법대교수, 변호사.]
▲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 나는 철거민이었다. 초등생이던 1972년 일가족이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 전세방을 얻어 이사했는데, 나의 부모님은 그 집이 무허가로 증축된 집인 줄 몰랐다. 어느 날 구청 철거반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재도구를 대충 들어내더니 집을 해머로 부숴버렸다. 집주인은 얼마 후 다시 집을 지었다. 그러면 몇 달 후 철거반은 어김없이 들이닥쳐 다시 철거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예닐곱번의 신축과 철거가 반복되다가 나의 가족은 결국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 16만원을 한푼도 못 받고 쫓겨났다. 그 무렵 ‘무등산타잔’이라는 청년이 사제총으로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하였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눈앞에서 자기 집이 해머에 부서져 내리는 순간 눈에서 불꽃이 인다. 그는 그 불꽃을 이기지 못하였으리라.
그의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남의 건물을 무단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의 부모는 모든 게 가난 탓이라고 여기고, 그저 밤낮으로 일하면서 자식을 가르쳤다. 사회도, 정부도,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원망할 줄 몰랐다. '자본주의의 모순' 따위는 알지 못했지만, 불법건물을 헐지 못하게 떼를 쓰거나 가난을 남의 탓으로 여기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다는 정도의 이치는 알았다. 그때 나의 부모가 '전철연'을 조직하고 사회모순을 타파하겠다고 나섰다면 가난에서 벗어나고 철거민문제가 해결됐을까? 우리의 부모세대는 묵묵히 일할 줄밖에 몰랐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태반이 하루 세끼를 걱정하던 세계 최빈국에서 이제 웬만하면 승용차를 굴리면서 비만을 걱정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진 듯하다. 용산참사를 구실로 촛불을 다시 들고 정부를 타도하자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용산철거민 현장에서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7시간만에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매일 저녁 추모식을 한다면서 도시에서 촛불집회를 여는가 하면 범국민추모대회를 빙자하여 정권퇴진을 외치고 나섰다. 온 나라를 마비시켰던 광우병 촛불을 다시 들어 이 사회를 흔들자는 저의가 한눈에 보인다. 여기에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민주당이 용산 사고에서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국민이 민주당에 대하여 큰 기대를 할 수 있다”고 부채질하자 민주당마저 거리로 나오더니 며칠 전에는 천주교사제단까지 가세했다.
용산참사는 사고(事故)다. 전철연이라는 ‘사업체’가 철거민을 이용하여 사업을 벌이던 와중에 애꿎은 철거민과 경찰관이 희생된 비극이다. 그런데 촛불선동세력은 이런 비극에 신바람을 내면서 정권퇴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실상 철거민도, 못 가진 자도 아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에 오른 분도 많고, 대부분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다. 그러니 ‘민중이 주인인 세상’이라는 어려운 말도 자주 쓴다. 그런데 그들은 무학인 나의 부모도 깨쳤던 이치를 모르는 듯하다. 위법한 요구로 떼를 쓰거나 가난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는 이치 말이다.
용산참사를 구실로 촛불을 들어 정부를 타도하자는 선동세력은 이념장사꾼이요 정치장사꾼이다. 입만 열면 민족과 통일을 말하고, 억압받는 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부르짖지만 그들의 행동은 늘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으니 실상은 사회를 뒤흔들어 자신의 잇속을 차리겠다는 장사꾼들일 뿐이다. 좌파라 부르기에도 아깝다. 그들의 선동에 따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정권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객이다. 지난 50~60년대에나 팔릴 철 지난 물건을 구입하는 ‘철없는’ 구매자일 뿐이다.
요즘의 철거민들에게 나의 부모처럼 앉아서 철거를 당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남의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이념장사꾼들의 잇속만 채워주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정권퇴진을 외치겠다는 사람들은 최소한 누구의 장삿속에 놀아나고 있는지는 깨닫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 철거민 문제는 기본적으로 빈곤문제다. 사회가 흔들릴수록 빈곤은 심화된다. 이념장사꾼들이 설치고, 그들의 고객이 많을수록 경제는 위축되고 빈곤층은 더 고단해질 뿐이다.
철거민의 초상집에 좌판을 차리고 이념을 팔겠다는 무리들이여, 조금이라도 가슴이 아프다면 이제 좌판을 접으라.
▲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 나는 철거민이었다. 초등생이던 1972년 일가족이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 전세방을 얻어 이사했는데, 나의 부모님은 그 집이 무허가로 증축된 집인 줄 몰랐다. 어느 날 구청 철거반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재도구를 대충 들어내더니 집을 해머로 부숴버렸다. 집주인은 얼마 후 다시 집을 지었다. 그러면 몇 달 후 철거반은 어김없이 들이닥쳐 다시 철거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예닐곱번의 신축과 철거가 반복되다가 나의 가족은 결국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 16만원을 한푼도 못 받고 쫓겨났다. 그 무렵 ‘무등산타잔’이라는 청년이 사제총으로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하였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눈앞에서 자기 집이 해머에 부서져 내리는 순간 눈에서 불꽃이 인다. 그는 그 불꽃을 이기지 못하였으리라.
그의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남의 건물을 무단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의 부모는 모든 게 가난 탓이라고 여기고, 그저 밤낮으로 일하면서 자식을 가르쳤다. 사회도, 정부도,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원망할 줄 몰랐다. '자본주의의 모순' 따위는 알지 못했지만, 불법건물을 헐지 못하게 떼를 쓰거나 가난을 남의 탓으로 여기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다는 정도의 이치는 알았다. 그때 나의 부모가 '전철연'을 조직하고 사회모순을 타파하겠다고 나섰다면 가난에서 벗어나고 철거민문제가 해결됐을까? 우리의 부모세대는 묵묵히 일할 줄밖에 몰랐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태반이 하루 세끼를 걱정하던 세계 최빈국에서 이제 웬만하면 승용차를 굴리면서 비만을 걱정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진 듯하다. 용산참사를 구실로 촛불을 다시 들고 정부를 타도하자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용산철거민 현장에서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7시간만에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매일 저녁 추모식을 한다면서 도시에서 촛불집회를 여는가 하면 범국민추모대회를 빙자하여 정권퇴진을 외치고 나섰다. 온 나라를 마비시켰던 광우병 촛불을 다시 들어 이 사회를 흔들자는 저의가 한눈에 보인다. 여기에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민주당이 용산 사고에서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국민이 민주당에 대하여 큰 기대를 할 수 있다”고 부채질하자 민주당마저 거리로 나오더니 며칠 전에는 천주교사제단까지 가세했다.
용산참사는 사고(事故)다. 전철연이라는 ‘사업체’가 철거민을 이용하여 사업을 벌이던 와중에 애꿎은 철거민과 경찰관이 희생된 비극이다. 그런데 촛불선동세력은 이런 비극에 신바람을 내면서 정권퇴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실상 철거민도, 못 가진 자도 아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에 오른 분도 많고, 대부분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다. 그러니 ‘민중이 주인인 세상’이라는 어려운 말도 자주 쓴다. 그런데 그들은 무학인 나의 부모도 깨쳤던 이치를 모르는 듯하다. 위법한 요구로 떼를 쓰거나 가난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는 이치 말이다.
용산참사를 구실로 촛불을 들어 정부를 타도하자는 선동세력은 이념장사꾼이요 정치장사꾼이다. 입만 열면 민족과 통일을 말하고, 억압받는 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부르짖지만 그들의 행동은 늘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으니 실상은 사회를 뒤흔들어 자신의 잇속을 차리겠다는 장사꾼들일 뿐이다. 좌파라 부르기에도 아깝다. 그들의 선동에 따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정권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객이다. 지난 50~60년대에나 팔릴 철 지난 물건을 구입하는 ‘철없는’ 구매자일 뿐이다.
요즘의 철거민들에게 나의 부모처럼 앉아서 철거를 당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남의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이념장사꾼들의 잇속만 채워주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정권퇴진을 외치겠다는 사람들은 최소한 누구의 장삿속에 놀아나고 있는지는 깨닫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 철거민 문제는 기본적으로 빈곤문제다. 사회가 흔들릴수록 빈곤은 심화된다. 이념장사꾼들이 설치고, 그들의 고객이 많을수록 경제는 위축되고 빈곤층은 더 고단해질 뿐이다.
철거민의 초상집에 좌판을 차리고 이념을 팔겠다는 무리들이여, 조금이라도 가슴이 아프다면 이제 좌판을 접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