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의회 민주주의
2009.04.16 14:43
[서은옥, “실종된 의회 민주주의,” 미래한국, 2009. 3. 19, 8-11쪽; 미래한국 기자.]
대한민국에 의회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 2009년 3월 3일 막을 내린 2월 임시국회는 대부분 쟁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또다시 막을 내렸다. 쟁점 법안 중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및공정거래법 개정안만 통과했고 대부분 쟁점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가장 큰 쟁점 법안이었던 미디어 관계 법안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100일간 여론 수렴을 거쳐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2월 임시국회 폐회 후 법안을 심의․의결하는 국회는 온데간데없고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국적 불명의 기구만 덩그러니 남은 모습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되어 온 국회 내 폭력 역시 심각하다. 대낮에 국회의원이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 인사로부터 폭행과 구타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의회 민주주의의 실종,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의회 민주주의의 실종은 먼저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법안을 상정하고 심의해 의결하는 것은 국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한미 FTA 비준 동의안, 금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이 포함된 미디어 관계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법안의 실제 의결이 이루어지는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되려면 이에 앞서 상임위원회에 상정이 돼 통과된 후 법사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거나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위의 법안들은 야당의원들의 반대로 상임위 상정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원회에서 상임위원장이 직권으로 상정했고 이에 항의하는 야당의원들과 충돌이 이루어지면서 국회 내 폭력이 난무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한 미디어 관계 법안에 대해 앞으로 100일 동안 여론을 수렴하게 될 ‘사회적 논의기구’ 역시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여야는 이미 사회적 논의기구를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인 선진과창조모임 간사 합의로 그 명칭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로 명명하고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문광위) 산하 자문기구로서 한나라당 추천 10인, 민주당 추천 8인, 선진과창조모임 추천 2인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말 그대로 미디어 관계 법안은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항이므로 충분한 기간 동안 여론 수렴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디어 관계법 처리 협상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를 먼저 제안한 야당의 주장 내용을 보면 이 기구가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사회적 논의기구가 단순한 자문기구 성격이 아닌 합의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위원회(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그냥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그런 집단이 있다”면서 “국민위원회가 이런 저런 언론악법에 대한 의견 조율을 해 여론을 수렴되면 국회에서 반영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여론을 수렴해 법안에 반영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고유 영역이다. 하지만 야당 대표의 주장 내용을 보면 정치색이 농후한 학계․시민단체 인사들이 논의한 내용을 수용해야 한다고 국회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언론노조,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대 등의 좌파 시민단체들도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이 발표된 이후 이 기구는 “미디어 관련법에 반영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돼야 하며 여기에서 나온 내용은 수정 없이 법안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발전위원회 구성을 두고 보인 시민단체의 반응들은 시민단체가 아닌 정치․이익단체에 가깝다. ‘합의기구’를 요구하며 국회 본연의 입법권에 어떻게든 개입하려는 시민단체들에 대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홍위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과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사회적인 기구를 통한 여론 수렴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미디어 관계 법안이 이슈가 된 지난해 연말부터 국회가 여론을 수렴하는 공식적인 통로인 각종 공청회와 토론회가 수차례 열려왔다.
여당은 지난 1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디지털 방통융합시대의 미디어 산업 활성화’ 를 주제로 한 공청회(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주최), 2월 3일 ‘대한민국 미디어 콘텐츠의 올바른 자리매김과 환경조성을 위한 대토론회’(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주최), 2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방향모색을 위한 토론회’(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주최)등을 계속 진행해 왔고 야당은 지방을 순회하며 각종 간담회를 진행해 왔다.
대중매체를 통한 여론수렴도 이루어졌다. 국회 문광위 소속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과 이종걸 민주당 의원,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1월 5일 KBS 1TV 심야토론에 참석,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문제는 그동안 공청회․토론회 등의 논의의 장이 마련돼 왔지만 한쪽 인사들만 참여하는 반쪽짜리 공청회가 대부분이었고 여야 인사들이 참여해 토론을 하더라도, 각각의 논리가 뚜렷해 타협의 여지가 없었던 데 있다. 이제는 여론 수렴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수렴된 논의를 가지고 100일 동안 여야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대한민국에 의회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 2009년 3월 3일 막을 내린 2월 임시국회는 대부분 쟁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또다시 막을 내렸다. 쟁점 법안 중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및공정거래법 개정안만 통과했고 대부분 쟁점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가장 큰 쟁점 법안이었던 미디어 관계 법안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100일간 여론 수렴을 거쳐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2월 임시국회 폐회 후 법안을 심의․의결하는 국회는 온데간데없고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국적 불명의 기구만 덩그러니 남은 모습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되어 온 국회 내 폭력 역시 심각하다. 대낮에 국회의원이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 인사로부터 폭행과 구타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의회 민주주의의 실종,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의회 민주주의의 실종은 먼저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법안을 상정하고 심의해 의결하는 것은 국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한미 FTA 비준 동의안, 금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이 포함된 미디어 관계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법안의 실제 의결이 이루어지는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되려면 이에 앞서 상임위원회에 상정이 돼 통과된 후 법사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거나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위의 법안들은 야당의원들의 반대로 상임위 상정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원회에서 상임위원장이 직권으로 상정했고 이에 항의하는 야당의원들과 충돌이 이루어지면서 국회 내 폭력이 난무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한 미디어 관계 법안에 대해 앞으로 100일 동안 여론을 수렴하게 될 ‘사회적 논의기구’ 역시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여야는 이미 사회적 논의기구를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인 선진과창조모임 간사 합의로 그 명칭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로 명명하고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문광위) 산하 자문기구로서 한나라당 추천 10인, 민주당 추천 8인, 선진과창조모임 추천 2인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말 그대로 미디어 관계 법안은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항이므로 충분한 기간 동안 여론 수렴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디어 관계법 처리 협상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를 먼저 제안한 야당의 주장 내용을 보면 이 기구가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사회적 논의기구가 단순한 자문기구 성격이 아닌 합의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위원회(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그냥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그런 집단이 있다”면서 “국민위원회가 이런 저런 언론악법에 대한 의견 조율을 해 여론을 수렴되면 국회에서 반영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여론을 수렴해 법안에 반영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고유 영역이다. 하지만 야당 대표의 주장 내용을 보면 정치색이 농후한 학계․시민단체 인사들이 논의한 내용을 수용해야 한다고 국회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언론노조,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대 등의 좌파 시민단체들도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이 발표된 이후 이 기구는 “미디어 관련법에 반영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돼야 하며 여기에서 나온 내용은 수정 없이 법안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발전위원회 구성을 두고 보인 시민단체의 반응들은 시민단체가 아닌 정치․이익단체에 가깝다. ‘합의기구’를 요구하며 국회 본연의 입법권에 어떻게든 개입하려는 시민단체들에 대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홍위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과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사회적인 기구를 통한 여론 수렴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미디어 관계 법안이 이슈가 된 지난해 연말부터 국회가 여론을 수렴하는 공식적인 통로인 각종 공청회와 토론회가 수차례 열려왔다.
여당은 지난 1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디지털 방통융합시대의 미디어 산업 활성화’ 를 주제로 한 공청회(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주최), 2월 3일 ‘대한민국 미디어 콘텐츠의 올바른 자리매김과 환경조성을 위한 대토론회’(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주최), 2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방향모색을 위한 토론회’(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주최)등을 계속 진행해 왔고 야당은 지방을 순회하며 각종 간담회를 진행해 왔다.
대중매체를 통한 여론수렴도 이루어졌다. 국회 문광위 소속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과 이종걸 민주당 의원,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1월 5일 KBS 1TV 심야토론에 참석,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문제는 그동안 공청회․토론회 등의 논의의 장이 마련돼 왔지만 한쪽 인사들만 참여하는 반쪽짜리 공청회가 대부분이었고 여야 인사들이 참여해 토론을 하더라도, 각각의 논리가 뚜렷해 타협의 여지가 없었던 데 있다. 이제는 여론 수렴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수렴된 논의를 가지고 100일 동안 여야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