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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에 대한 어느 부장판사의 우려


[박찬주, "공수처 설치에 대한 어느 부장판사의 우려," 조선일보, 2019. 5. 13, A39쪽.]

부산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최근 언론과 했던 인터뷰 내용이 눈에 띄었다. "관변 단체나 악성 민원인의 고발장을 토대로 공수처가 판·검사들에게 직권남용과 직무유기까지 다 묻겠다고 하면 설설 길 수밖에 없다. 특히 정권에 눈엣가시인 소신 판사를 제거하는 데는 최고의 도구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는 그런 일이 필자에게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군 인권센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한 소위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여론의 매서운 질타를 받았고, 대통령은 강력한 수사 지침을 내렸다. 국방부와 군 검찰은 필자가 2작전사령관에서 물러날 때 이미 민간인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강제로 군인 신분을 유지하게 한 뒤, 광범위한 압수 수색과 계좌 추적 등을 통해 공관병 갑질과 관련이 없는 뇌물죄로 군 영창에 수감하고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대장은 법에 정해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동 전역된다고 군 인사법은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군 검찰이 몰랐을 리 없고 수사 검사도 직접 인정했던 사안이었다. 군 검찰은 모든 수사 자료를 민간 검찰에 넘길 준비를 한 후, 필자를 소환해 이제 전역 후 민간 검찰로 이관될 것이라고 통보까지 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정부는 위법·편법을 동원해 전역을 막았다. 결국 민간인을 군 검찰이 압수 수색하고 구속해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민간인을 군사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헌법 27조를 위반한 것이다.

반란죄나 반역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현역 대장을 포승줄에 묶어 군사법정에 세우는 것은 개인을 떠나 제복과 계급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고 장병들에게는 스스로를 참담하게 만드는 장면일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군 고위 장성의 비위가 발견되면 신분을 전환시켜 처벌하는 게 관례이다.

결국 필자는 대법원에 신분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소청을 하였다. 대법원은 2017년 12월 '박찬주 대장은 이미 지난 8월 9일부로 민간인이 되었다'는 결정을 내렸고 비로소 군 영창에서 나올 수 있었다. 석 달 만의 일이었다.

이런 참담한 일이 민주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군 통수권의 일부인 군 검찰권이 사회적 감시나 견제 없이 폐쇄적으로 행사되었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이와 유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군 인권센터가 주도해 선동한 공관병 갑질에 묻혀 국민들은 이런 어마어마한 국가권력 남용의 실체를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명백히 군검찰권 남용이었고 군 사법권 농단이었다.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우려한 현상이 너무나도 똑같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일부 언론은 김영란법 위반 등 일부 유죄 판결이 있지 않으냐며 자중할 때라고 비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박찬주 개인에 대한 유·무죄 여부가 이러한 반(反)헌법적 권력 남용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필자에게 뇌물죄는 너무나 뜬금없는 혐의였고 무죄를 의심한 적이 없다. 사람들은 진실은 승리한다며 위로했지만 진실보다 더 강한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재판부가 진실에 기초하지 않고 정치나 여론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정상적인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해서는 안 될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필자는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우려에 적극 공감한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히는 모습도 좋아 보인다. 군대가 대한민국 방위의 최후 보루라면 사법부는 사회정의 구현의 최후 보루라 할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사법정의를 세워야 할 판사들을 위협하고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공수처 설치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3/2019051300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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