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죽이기'
[선우정, "백선엽 죽이기," 조선일보, 2019. 6. 26, A38쪽.] → 좌파정권, 6.25전쟁
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6·25전쟁에 대해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많은 언론이 이 말을 크게 보도했다. 1면 톱기사로 쓴 신문도 있었다. 콩을 콩, 팥을 팥이라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 당연한 말을 이렇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3년 전 히말라야에서 쓰고 공개한 글이 있다. 6·25 전쟁에 미군 일원으로 참전한 한국계 미국인 김영옥 대령을 전설적 영웅으로 찬양하는 내용이다. 다음이 걸렸다. 용감한 미군 대령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비겁한 국군 지휘관을 대비해 말 보따리를 풀어간다.
"김 대령이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상을 당해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던 그 시기, 우리군 일부 고위 지휘관들은 전투마다 연전연패해 전선을 무너뜨리고도 훈장을 받았다. 지휘를 부하에게 떠넘긴 채 전선을 무단 이탈한 지휘관도 있었다. 그로 인해 유엔군으로부터 굴욕의 군단 해체 조치를 당하고, 작전권이 미군에 넘어가는 빌미를 제공했다."
국군 지휘관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끝난다. '일부'만 말하고 '다수' 지휘관에 대해선 침묵한다. 용감한 미군과 비겁한 국군. 이 구도를 분명히 해야 전시작전통제권과 같은 안보·전략 문제를 민족 감정의 과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같은 글에서 "아직도 작전권을 미군에 맡겨놓고, 미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약한 군대"라고 했다. 그러면 지금 문 정권의 국군도 약하고 비겁한 존재인가. 작전권을 가져오고 미군으로부터 독립해야 강해지고 용감해지는가. 몇 걸음 더 나아간 특정 세력의 '미군 철수' 주장도 맥이 통한다. 용감하면 내보내라는 것이다.
이들은 파편적 사건으로 전체를 규정한다. 무능한 국군 때문에 전작권이 넘어갔다는 주장이 그렇다. 전작권이 6·25 발발 직후 통합적 작전 수행을 위해 전략적으로 유엔군에 위임됐다는 것을 학자들은 다 안다. 그들이 말하는 비겁한 패배는 강원도 현리 전투를 말한다. 이때의 전작권 환수는 전투 현장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지엽적 권한에 불과했다. 전투는 치욕적이었으나 그 결과 미군의 집중 훈련이 시행돼 국군은 전쟁 후반기 전선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강군으로 성장했다. 파편적 사건을 종합하면 국군의 역사적 위상은 달라진다. 국군의 비겁을 말하는 세력의 주장은 실체(實體) 앞에서 무너진다. 진실을 뒷받침할 팩트를 69년 전 국군의 선봉에서 싸운 노병(老兵)이 축적했기 때문이다. 백선엽(白善燁)이다.
그는 6·25 때 한국을 지킨 전쟁 영웅이다. 그만큼 큰 업적이 민주화 이후 이념적 혼란 과정에서 그가 낸 저술이라고 생각한다. 1989년 출간한 '군과 나'를 읽을 때 나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떠올렸다. 거짓과 과장을 발라내고 영광과 치욕을 동시에 서술한 현장과 체험의 기록이다. '징비록'이 없었다면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영웅의 역사적 존재감은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명군(明軍)을 받들고 조선군을 무시하던 선조의 비대칭 세계관은 '용감한 미군과 비겁한 국군' 구도의 역사관과 흡사하다. 6·25 때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리지웨이와 밴플리트는 '군과 나' 서문에서 "이 책 덕분에 한국군이 본분을 다하지 못했고 무능력했다는 잔인하고 그릇된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증거를 찾게 됐다"고 썼다. 문 대통령이 읽었다면 히말라야에서 그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대주의 역사관도 류성룡을 뛰어넘지 못했듯, 국군의 역사를 왜곡하는 어떤 시도도 백선엽을 넘지 못했다. 최근 특정 세력의 '백선엽 죽이기'는 국군의 과거를 흑역사로 만드는 데 실패한 세력이 미친 듯 뿜어대는 독기에 해당한다.
신부 함세웅은 그를 향해 "사죄하지 않는 악질 친일파"라고 공격했다. 야당 대표가 그를 찾아가 국가 안보를 걱정한 다음이었다. 내가 함세웅 이름을 처음 들은 건 35년 전 그가 차를 몰고 가다가 일곱 살 아이를 치어 숨지게 했을 때였다. 자책(自責) 때문에 그가 신부 생활을 제대로 할지 진심으로 걱정하던 동네 신자들을 기억한다. 순진한 시대였다. 그 후 그는 더욱 맹렬히 남의 허물을 물어뜯었다. 팔순에
접어드는 지금도 백수(白壽)가 넘은 노인을 향해 저런다. 치사(致死) 사고 때문에 그를 "살인자"라고 할 수 없듯, 명령을 받고 전출된 부대의 성격을 근거로 "악질 친일파"라고 공격해선 안 된다. 그런데 신부 함세웅은 이 상식적 잣대를 자신, 또는 자신의 패거리에게만 적용한다. 백선엽을 공격하는 사람 상당수의 정신 상태와 처세 방식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