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 아이들 대신 세상 살아줄 건가
2010.07.20 13:59
[박지향, “진보 교육감, 아이들 대신 세상 살아줄 건가,” 조선일보, 2010. 7. 13, A34; 서울대 교수․서양사.]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등장하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그들이 내세운 정책은 무상급식, 교원평가의 중단, 학생 인권조례와 집회 활동 허용 등을 포함한다. 사실 국민의 다수가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어리석고 아집에 찬 보수 진영의 분열 덕분에 30%대의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곽노현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보수적 교육이념과 진보적 교육이념의 차이를 실감하여 다음 선거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직접 경험을 쌓을 기회라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이 실험실 쥐와 같은 처지가 돼서는 안 되겠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그림 가운데 '공화국'이라는 작품이 있다.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성이 두 아이를 품고 젖을 먹이고 있고 그 발치에는 또 다른 어린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도미에는 시민을 대표하고 시민을 위하는 공화국이라면 당연히 미래의 시민을 먹이고 가르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곽 교육감이 이 그림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정책은 도미에식 이상(理想)에 충실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19세기식 사고방식이며, 전면적 무상급식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는 능히 미래의 시민을 먹일 수 있다. 새 교육감이 우리 사회가 현재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교육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만 몰입한 듯하여 걱정스럽다.
1970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자 교육과학부 장관이 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7-11세 아이들 우유 무상 급식을 중단했다. 긴축재정으로 인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야당인 노동당 및 좌파 지식인과 언론으로선 호기(好機)였다. 사실 이미 이때쯤 되면 대부분의 영국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우유를 배식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정도의 영양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상 우유의 중단은 곧바로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반대파들은 대처에게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마귀 할멈이라는 비난을 쏟아 부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처는 다른 부처에 맞서 교육부 예산을 끌어올렸고, 그 돈으로 교사 수를 늘리고 일하는 엄마를 위한 유아원을 운영했으며 개방대학(일종의 방송통신대학)을 지원했다. 대처가 물러났을 때 진보 성향의 신문조차 "대처는 그 어느 노동당 정부의 교육부장관보다 노동 대중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0년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무상급식이 우선 과제일까. 드러나지 않게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돕는 게 불가능하단 말인가. 빠듯한 예산으로 해야 할 많은 일 가운데 첫 순위는 무너진 공교육을 살리는 것이고,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교사들에게 연구 학기를 할당하여 재충전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교사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열정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원 평가(評價)도 예정대로 실시해야 한다. 대학에서도 살벌할 정도로 행해지는 평가제를 교사들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다. 게다가 중․고등학생이 굳이 집회를 열어 주장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일까. 오히려 학급토론회가 내 주장을 제기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한 후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더욱 효율적인 교육임이 틀림없다. 대중 집회란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압도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학생 인권조례엔 할 말을 잃게 된다. 나 자신 중․고등학교 시절에 귀밑 1㎝를 넘지 못하는 두발 규제와 한겨울에도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규율 등에 반발해 학교를 싫어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의 훈련 덕분에 어려움에 부딪혀도 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강인함이 생긴 것 같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던 발표를 맡은 학생이 그날 수업에 안 나타나는 무책임한 행동이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도 발생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 험한 세상을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니라면 학생들이 보다 의지가 강인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게 교육자의 할 일이다. 세상엔 힘든 일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그러나 노력과 성실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익혀야 하는 삶의 기본원칙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등장하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그들이 내세운 정책은 무상급식, 교원평가의 중단, 학생 인권조례와 집회 활동 허용 등을 포함한다. 사실 국민의 다수가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어리석고 아집에 찬 보수 진영의 분열 덕분에 30%대의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곽노현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보수적 교육이념과 진보적 교육이념의 차이를 실감하여 다음 선거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직접 경험을 쌓을 기회라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이 실험실 쥐와 같은 처지가 돼서는 안 되겠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그림 가운데 '공화국'이라는 작품이 있다.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성이 두 아이를 품고 젖을 먹이고 있고 그 발치에는 또 다른 어린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도미에는 시민을 대표하고 시민을 위하는 공화국이라면 당연히 미래의 시민을 먹이고 가르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곽 교육감이 이 그림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정책은 도미에식 이상(理想)에 충실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19세기식 사고방식이며, 전면적 무상급식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는 능히 미래의 시민을 먹일 수 있다. 새 교육감이 우리 사회가 현재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교육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만 몰입한 듯하여 걱정스럽다.
1970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자 교육과학부 장관이 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7-11세 아이들 우유 무상 급식을 중단했다. 긴축재정으로 인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야당인 노동당 및 좌파 지식인과 언론으로선 호기(好機)였다. 사실 이미 이때쯤 되면 대부분의 영국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우유를 배식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정도의 영양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상 우유의 중단은 곧바로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반대파들은 대처에게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마귀 할멈이라는 비난을 쏟아 부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처는 다른 부처에 맞서 교육부 예산을 끌어올렸고, 그 돈으로 교사 수를 늘리고 일하는 엄마를 위한 유아원을 운영했으며 개방대학(일종의 방송통신대학)을 지원했다. 대처가 물러났을 때 진보 성향의 신문조차 "대처는 그 어느 노동당 정부의 교육부장관보다 노동 대중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0년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무상급식이 우선 과제일까. 드러나지 않게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돕는 게 불가능하단 말인가. 빠듯한 예산으로 해야 할 많은 일 가운데 첫 순위는 무너진 공교육을 살리는 것이고,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교사들에게 연구 학기를 할당하여 재충전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교사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열정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원 평가(評價)도 예정대로 실시해야 한다. 대학에서도 살벌할 정도로 행해지는 평가제를 교사들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다. 게다가 중․고등학생이 굳이 집회를 열어 주장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일까. 오히려 학급토론회가 내 주장을 제기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한 후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더욱 효율적인 교육임이 틀림없다. 대중 집회란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압도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학생 인권조례엔 할 말을 잃게 된다. 나 자신 중․고등학교 시절에 귀밑 1㎝를 넘지 못하는 두발 규제와 한겨울에도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규율 등에 반발해 학교를 싫어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의 훈련 덕분에 어려움에 부딪혀도 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강인함이 생긴 것 같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던 발표를 맡은 학생이 그날 수업에 안 나타나는 무책임한 행동이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도 발생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 험한 세상을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니라면 학생들이 보다 의지가 강인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게 교육자의 할 일이다. 세상엔 힘든 일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그러나 노력과 성실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익혀야 하는 삶의 기본원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