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바다에서 치솟는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면서 문득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3년 만에 여러 개의 핵탄두를 수용할 수 있는 첨단 다탄두미사일 디자인으로 진화했다. SLBM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보다 어려운 고난도의 전략 무기이자 궁극의 최종 병기다.
두 달 남짓 연말까지 북한 핵무장의 실질적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북한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선,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이다. 연말까지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갈 것임을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필두로 일련의 담화로 압박하고 있다. 새로운 길이란 미국과의 신사협정을 깨고 ICBM 실험을 재개하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일격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이후 12차례에 걸친 각종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여 점진적으로 사거리를 늘려왔다. 미국은 동맹을 위협하는 미사일 실험을 방치했다. 심지어 ICBM보다 전략적으로 심각한 SLBM 실험조차 방치했다. 어느새 우리는 어떤 도발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길들고 있다. ICBM 실험을 재개하더라도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역사적으로 핵을 보유한 상대에게 군사적 수단을 쓴 사례는 없다. 더욱이 천만 서울 시민이 무방비의 인질 상태다. 그리고 북한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접해 있다. 과거 수차례의 ICBM 발사에도 미국은 군사 수단을 동원하지 못했다.
북한은 미 대선 직전 반드시라고 말할 정도로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 도발마다 손해를 본 적이 없고 항상 이득을 얻었다. 2017년 말 수소폭탄 실험과 수차례의 ICBM 발사를 통해 최고조의 긴장을 조성한 직후, 현재의 미·북 정상회담 틀을 얻은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다시 언급하고 화를 내겠지만 군사 수단을 동원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도발 카드로 미 대선 정국에서 판돈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말연시 우리는 북한 ICBM 발사를 목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믿는 구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문재인 정부다. 삶은 소대가리,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등 북한은 도를 넘는 비난을 문 대통령에게 퍼붓고 있다. 북한은 이런 멸시를 통해 북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 문재인 정부는 북에 매달릴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그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금강산을 찾아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놀랍게도 문 대통령은 '관광은 유엔안보리 제재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고, 통일부는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협상용이고 미국을 자제시키려 할 것이다.
북한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가장 큰 이유는 대선을 앞두고 탄핵 국면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다. 잇따른 외교 실책과 스캔들이 탄핵 조사로 비화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한 그는 어떻게 해서든 국내 시선을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합의든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김정은과의 합의는 소위 '나쁜 합의'이며 완전한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북한을 묵인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듯이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한 것처럼 과대 포장할 것이다. 낡은 영변 핵시설 동결 대가로 평화선언과 함께 주한 미군 철수를 포함하는 파격적 내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30년 핵 협상의 결말이 이렇게 끝난다면 너무 허무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미국의 주류는 그러한 결말을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다. 조폭에게 상납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예의 삶인지 자유 시민으로서의 삶인지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