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시청 공무원인 아가타 니에비아돔스카(35)씨는 여섯 살짜리 딸과 5세·3세 두 아들까지 세 자녀를 키운다. 남의 건물을 빌려 숙박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벌지만 세금·공과금을 제외하면 부부가 손에 쥐는 돈은 월 5000즈워티(약 151만원)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폴란드에서 월급쟁이 한 명의 평균 세후 소득이 3500즈워티(약 106만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부의 소득이 평균치보다 적은 편이다. 그래도 폴란드 정부가 자녀 한 명당 매달 500즈워티(약 15만1000원)씩 주는 아동 수당 덕분에 아가타는 "요즘 숨통이 트이고 있다"고 했다. 매달 세 자녀 몫으로 받는 1500즈워티는 부부 소득의 30%에 달한다. 아가타는 "아이들은 수영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우리 부부는 영화를 더 자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폴란드 정부는 만 18세 이하 모든 국민에게 500즈워티씩 지급하고 있다. 부모의 소득수준이나 근로 여부를 묻지 않고 모든 가정에 일괄적으로 뿌린다. 법과정의당이 집권한 이듬해인 2016년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는 둘째 이하 아이들에게 500즈워티씩 지급하면서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700만명에 달하는 18세 이하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아이 셋을 낳고 폴란드 직장인 평균 세후 소득(3500즈워티)을 버는 외벌이 가장이 있는 가정이라면 소득의 43%를 따로 받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폴란드 정부는 작년 5월 연금 수령자 970만명 전원에게 한 달치 연금인 1100즈워티(약 33만2600원)씩 '보너스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107억즈워티(약 3조2350억원)를 살포한 것이다. 정권은 '13번째 월급'이라며 선전했다. 아동 수당과 보너스 연금을 합하면 수령자가 1670만명으로, 폴란드 전체 인구(3800만명)의 44%에 달한다. 폴란드 정부는 2015년 이후 올해까지 5년 사이 최저임금도 49% 올렸고 올해 2600즈워티인 최저임금을 3년 안에 4000즈워티로 54%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르샤바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표트르 에블린스키(35)씨는 "세금으로 생색을 내면서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수작을 부린다"며 "저학력·저소득층이고 지방에 사는 사람일수록 정부가 던져주는 수당에 깊게 중독돼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교사로 정년퇴직한 바르샤바 시민 크시슈토프 도브로볼스키(69)씨는 "지금 여당은 돈을 주면서 자꾸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과거 공산당이 하던 말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현금 살포는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총선에서 37.6%를 득표한 법과정의당은 2019년 총선에서는 43.6% 득표율을 기록하며 두 번 모두 의회 과반수를 차지했다.
폴란드 경제엔 모럴 해저드와 물가 급등, 재정 적자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바르샤바 남부 그로트제라 지구의 가족지원센터 책임자는 "부모가 아동 수당을 받아 술값으로 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변호사로 일하는 모니카 올슈젠스카(43)씨는 "폴란드인들은 쇼핑하고 여행하며 돈 쓰는 데 중독돼 있다"고 했다. 폴란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5년 마이너스 0.9%였지만 2018년에는 1.6%로 뛰었고 올해는 3.5%까지 오를 전망이다. 1990년대 이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던 경제도 정체되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18년 5.1%에 달한 폴란드 경제성장률은 올해는 3.1%로 낮아질 전망이다. 흑자였던
재정수지는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됐다.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정부가 현금을 뿌리는 건 국민을 잘못된 방식으로 길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돈을 뿌리는 정책은 곳간이 바닥나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돈을 주지 않는 새 정부를 맞이하면 국민은 돈을 주던 예전 포퓰리즘 정권이 더 능력 있었다며 향수를 갖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