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엔 백신이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800여개인데 세계보건기구(WHO)가 예방 효과를 인정한 백신은 B형간염·소아마비·천연두 등 25개뿐이다. 인플루엔자 독감 백신도 개발 착수에서 탄생까지 반세기 넘게 걸렸다. 에이즈에 돈을 그렇게 쏟아부었건만, 아직 백신이 없다. 게다가 코로나, 에이즈처럼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잦아 백신을 만들기 더 어렵다.
▶공포의 에볼라에도 백신이 없다. 주로 아프리카에 퍼지기에 다국적 제약 회사들이 수조원을 들여 백신을 개발할 시장 가치가 낮다고 본 탓이다. 메르스도 중동 풍토병이고, 조류인플루엔자는 동남아시아서 소수만 걸리기에 제약 회사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다. 의료계에는 "이왕 병에 걸릴 거면 돈 많은 미국이 많은 병에 걸리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치료제나 백신 구경을 한다는 얘기다. 백신에도 양극화가 있다.
▶2009년 신종 플루가 75만명의 감염자를 양산하며 우리나라를 휩쓸 때, '백신 주권' 말이 나오면서 국산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높았다. 마침 그때 제약 회사 녹십자가 같은 플루 계열인 인플루엔자 백신 제조 플랫폼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신종 플루를 얹어 7월에 개발을 시작했다. 신속 승인을 거쳐 10월에 백신을 내놨다. 신종 플루 사망자를 260명으로 막은 데는 치사율이 낮기도 했지만 초고속 백신 덕도 봤다.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자 많은 제약 회사와 연구소가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팬데믹인 데다 매년 돌 것 같으니 백신 개발에 호재다. 하지만 감염 차단 타깃을 찾아야 하고, 동물실험서 효과가 입증돼야 하고, 임상시험도 거쳐야 한다. 기존에 쓰던 RNA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플랫폼도 없기에 맨땅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코로나 태풍에 백신 덕 보긴 힘들어 보인다.
▶치료제 개발도 만만치 않다. 언제 후보 물질 찾고 임상시험 해서 내놓는단 말인가. 완치자 혈액의 항체를 갖다 쓰는 시도 도 실용화가 시원찮다. 그러기에 여러 나라가 기존에 나온 에볼라, 에이즈, 말라리아,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로 우한 코로나에 테스트하기 바쁘다. 용도 변경해서 임시변통해보는 것이다. 당분간 백신도 없고, 특효약도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밀집 공간서 마스크 쓰고, 손 자주 씻고, 잠 잘 자서 면역력을 높이는 '셀프 백신'에 기대며 이겨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