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가치에 충실한 교과서 새로 만들자
2015.11.13 11:02
헌법가치에 충실한 교과서 새로 만들자
[전희경, “헌법가치에 충실한 교과서 새로 만들자,” 미래한국, 2015. 10. 21, 22-23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에게 가장 중요한 전선은 역사와 교육이다. 역사관을 자기들 것으로 끌어오고 역사적 사실을 자신들의 논리대로 규정하는 작업의 반복을 통해 미래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저들은 알고 있다.
또 하나의 축은 교육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일은 전사(戰士)를 길러내는 일이다. 더욱이 사고체계가 성숙되기 전인 학생들이라 그리 수고스러운 작업도 아니다. 이른 나이에 저들에게 노출될수록 충성도가 강해진다.
역사교과서는 이처럼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가장 중요시하는 두 전선에 걸쳐져 있는 사안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저항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동안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검정교과서 제도를 통해 책임 없는 무제한적 자유를 누려왔다. 민중사관을 토대로 결성된 반대한민국의 카르텔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선후배 관계, 사제(師弟)관계, 경제적 실리관계로 뒤엉켜 출판사 종류만 다를 뿐 결국 대한민국의 공(功)은 깎아내리고 과(過)는 부풀리는 교과서, 북한을 정상국가로 취급하고 저들을 대변하는 교과서가 만들어져 왔다.
문제는 이렇게 치밀하게 계산된 반대한민국 세력에 대한 실태 파악에 대해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검정교과서는 민주화의 산물이고, 민주화는 무오류의 성역(聖域)이라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했던, 혹은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일을 피해가고자 하는 기회주의의 발로였던 결과는 똑같다.
정부가 명백한 직무유기를 하는 동안 반대한민국 세력은 멋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술하고 교과서를 통해 확산시켰다. 이를 토대로 참고서, 문제지, 인터넷강의, 논술시장이 자리 잡고 학생들이 끌려 다녔다. 저들이 그들의 사상적 신념도 지키면서 경제적 실리도 취하는 꽃놀이를 즐기는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적의 역사는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건국일이 없는 이상한 교과서
반(反)대한민국 교과서의 한결같은 서술 태도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남한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기술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와 나란히 북한에도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기술한다.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일제 식민지를 지나는 동안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라시아 대륙이 속속들이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자유민주주의를 택해 건국을 이룬 대한민국의 출발은 가장 드라마틱하고 지금의 번영의 출발이 되는 역사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이를 ‘정부수립’이라는 초라한 말로 설명하고 북한도 정부, 우리도 정부하는 식으로 대등하게 기술하는 것을 두고 편향과 왜곡이라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대한민국을 건국일이 없는 이상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인물이 바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다. 그는 해방 직후 전국민의 75%가 사회주의를 원할 때 개인의 자유와 창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대한민국에 이식시켰다. 먹고살기도 빠듯했던 당시에 의무교육을 통해 전국민을 교육하는 일이 국가 건설의 첩경임을 인식했던 선각자였다.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이승만 대통령 흠집 내기는 대한민국 건국 부정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그에게 친일, 독재의 낙인을 찍는 일은 결국 대한민국을 부정의한 나라로 낙인찍는 일이다.
북한을 대변하는 교과서
현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는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는 박하고 북한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분단의 책임도 남한에, 통일을 달성하지 못하는 책임도 남한에 돌린다.
북한은 자주와 주체의 땅이고 대한민국은 친일(親日), 친미(親美), 기회주의의 땅이라는 식의 맥락이 교과서에 깊숙이 박혀 있다. 따라서 돈으로 사는 평화라도 평화라면 좋은 것이고, 통일도 저들의 비위를 맞출 수만 있다면 어떤 이념을 바탕으로 하든 대수냐는 식이다.
이런 교과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북한정권을 이성국가,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국가라고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명확한 찬양·고무보다 더 무섭고 질이 안 좋은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분단국, 휴전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갈라진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적은 누구인지, 앞으로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못하는 역사교과서는 역사도 아니고 교과서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60여 년의 압축성장을 이뤄냈다. 세계 최빈국(最貧國)에서 벗어나 원조를 주는 국가로 성장했으며 민주화까지 성공시킨 나라다. 정치와 경제 두 축 모두를 우리처럼 빠른 시간 내에 성공시킨 국가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단절되어 있지 않다. 경제적 뒷받침 없는 민주화는 존재할 수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 없이 더 이상의 경제발전도 있을 수 없다. 역사교과서가 바라보아야 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시각은 이러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역사교과서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분절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산업화 시대를 경제발전은 이루었으나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도시화로 인간소외가 발생했고 자본주의는 약육상식의 경쟁과 피로사회를 가져왔다는 태도로 기술한다. 기술 내용들을 보노라면 그나마 ‘경제발전은 이루었으나’라는 전제를 달아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반면 민주화에 대해서는 긍정적 측면을 기술하는 데 열을 올릴 뿐 민주화의 그늘이라 할 수 있는 떼법, 법치주의의 실종, 책임의식 결여, 타인의 권리 존중과 같은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기업과 노동자를 갈등론적 시각에서 기술하고,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 국제사회로 뻗어나갈 포부를 심어주지 못한다.
정부가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에 임하면서 꼭 중심을 잡아야 할 사안이 있다. 가장 먼저 기계적 중립이란 말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팩트, 진실의 문제다. 좌우가 ‘균형 있게’ 모여 역사의 진실을 표결에 부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저열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역사교육을 망치고 어렵게 일어난 역사 바로세우기 움직임을 주저앉히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방향
또 다른 하나는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정치, 철학,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적 성취들을 담아내야 한다.
동시대 국제정세도 함께 보면서 종으로 횡으로 두루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교과서여야 하고 그런 교과서일 때라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말하는 ‘올바른’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 ‘헌법가치에 충실한’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하여 서 있다.
모든 이념에 대해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쟁이 허용되며 그 속에서 누구라도 승자가 될 수 있는 나라, 그 것이 대한민국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역사임을 담은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이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