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비핵화를 둘러싼 "미·북 외교는 한국의 창조물"이라고 썼다고 한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포함한 북핵 외교가 북핵 폐기를 위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에 더 많이 관련됐다"는 것이다. '통일 어젠다'라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 이벤트'를 말한다. 볼턴의 말은 북핵 협상이 핵 폐기 시한·방법·원칙 등 본질적 문제를 논의하는 대신 한국 정부가 마련한 트럼프·김정은 회담 쇼 위주가 돼버렸다는 뜻이다. 볼턴은 그 결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낚였다(hooked)"고 했다. 이를 '판당고(춤판)'라고 불렀다.
실제 미·북 정상회담은 2018년 3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난 데 이어 워싱턴으로 달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제안 의사를 전달함에 따라 성사된 것이다. 정 실장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보증을 선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실제 김정은이 정 실장에게 말한 것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었다. 이 말은 북한이 20년 이상 해오고 있는 것으로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장되게 전달한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주한미군과 미국 핵 억지력의 철수를 전제로 한 '한반도 비핵화'다.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뜻하는 미국의 비핵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었다. 북핵 폐기를 하려면 비핵화 개념부터 정리하고 그 후에 북핵 시설 신고와 폐기, 검증 절차를 합의해야 한다. 김정은은 이럴 생각이 전혀 없다. 미국 정보 당국자 전원과 볼턴,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교 안보에 문외한이면서 공부조차 하지 않는 트럼프는 한국 정부가 전하는 김정은의 말을 믿고 '낚인' 것이다.
핵실험을 한 국가 중 스스로 핵을 포기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김씨 왕조는 주민 수십만을 굶겨 죽이면서 핵을 개발했다. 핵 보유 때문에 자신이 죽을 정도가 아니면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 이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김정은 비핵화 의지'를 선전한 것은 속은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그런 것인가. 이 상황에서도 정권 인사들은 지금 문제의 근원인 북핵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남북 쇼만 하자고 한다. 그렇게 모래성을 또 한 번 쌓아본들 그게 얼마나 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