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천정배 법무장관이 사상 첫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을 때 반발이 거셌다. 여론조사에서 지휘권 발동에 "공감한다"(26%)는 응답보다 "공감 못 한다"(64%) 쪽이 곱절을 넘었다. 여당 의원조차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서 검찰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1954년 법무대신(장관)이 집권당 실세를 체포하지 말라고 첫 지휘권을 발동했다가 내각 붕괴로 이어졌다. 이후 법무대신이 취임할 때마다 "재임 중 지휘권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관례가 만들어졌다.
지휘권은 법률에 명시된 법무장관 권한이지만 뽑아드는 순간 자신도 다치는 양날의 검이다. 그 지휘권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는 조자룡 헌 칼처럼 쓰인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한명숙 사건의 참고인인 전과자를 어느 부서에서 조사하느냐를 놓고 지휘권을 꺼내 들었다. 파리 잡겠다고 보검을 꺼냈다. 검찰총장이 지휘권을 부분 수용하자 "내 지시를 잘라먹었다"고 했다. 역대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한 게 15년 전 딱 한 번뿐인데 "이렇게 말 안 듣는 총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런 법무장관은 처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처음 경험해 보는 나라를 만들겠다더니 정말 나라가 많이 변했다. 3년 전엔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아들이,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형님이 임기 동안 감옥에 갔다.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래도 검찰에 싫은 소리를 한 정권은 없었다. 문 정권은 검찰 수사가 청와대 언저리로 다가오자 지휘부를 통째로 좌천시켰다. 검찰총장을 모욕하고 조롱하면서 "이래도 안 물러날 거냐"고 조폭식 협박을 한다. 대통령 손에 피 안 묻히고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권력으로 막는 건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 사유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걸 검찰 개혁이라 부른다.
국회 법사위원장은 2004년부터 야당 몫이었다. 그 자리에서 보수 정권을 넌더리 치게 했던 사람이 민주당 박영선 법사위원장(2012~2014)이었다. 그가 이제 와서 "법사위원장은 여당 몫이 맞는다"고 한다. 내가 할 땐 권력 견제, 남이 하면 국정 방해다. 야당이 항의하자 아예 17개 상임위원장 전체를 독식해 버렸다. 1988년부터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나눠 가지던 관행마저 깨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받은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만 나와도 사퇴하겠다고 했었다. 자신이 속한 정파가 상대보다 깨끗하다는 자부심, 또는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정반대 셈법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훨씬 정의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상대보다 10배쯤 잘못을 저질렀어도 봐줘야 한다는 거다. 추 장관은 문 정권의 도깨비방망이 '친일 프레임'을 들고 검찰을 때린다. "해방이 돼서 모두 대한민국 만세 부르는 줄도 모르고 일제 경찰 힘을 빌린다"고 한다. 문 정권 편에 서면 독립군, 반대편에 서면 일제다.
총선 후 자매 정당 합당 결과, 민주당 176석이 통합당 103석을 압도했으니 광복이란다. 12년 전에도 총선 후 보수 통합으로 한나라당 172석, 민주당 83석이 됐던 건 일제 합병이었나. 그 총선 직후 광우병 파동 때 '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가짜 뉴스로 광화문이 촛불로 덮였다. 시위대 애창곡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빗대 미국 쇠고기 수입 결정을 내린 이명박 정부를 공격했다.
그 패러디를 얼마 전 기사 댓글에서 발견했다. 한 네티즌이 "대한민국은 문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문재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문재인으로부터 나온다"고 썼다. 2020년 대한민국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 헌법은 이 한 줄로 충분할 것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문재인 정권이며 그래서 마음대로 나라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형법도 372조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는 1조 1항을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문재인에 대한 찬반에 의한다'고 바꿔 쓰면 된다. 반문이면 유죄, 친문이면 무죄다. 실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