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지구상에서 가장 괴상한 독립기념일," 조선일보, 2020. 8. 19, A34쪽.] → 국가정체성, 좌파정권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현대사를 들여다봤다. 독립기념일을 202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광복절처럼 난장판으로 보내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는지 궁금했다. 찾다가 도달한 콩고에서 뜻밖의 장면을 접했다. 콩고는 몇 년 전까지 '아프리카의 세계대전'으로 불린 대규모 내전을 치렀다. 코로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흑사병과 에볼라에 시달린다. 경제 규모는 한국의 3%도 안 된다.
지난 6월 30일은 콩고 독립 60주년이었다. 아프리카 독립기념일이라면 독재자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콩고 정부는 행사를 생략했다. 아낀 비용을 코로나와 반군을 막는 용도로 돌렸다. 대신 이날을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는 기회로 삼았다.
신생 국가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콩고도 독립 직후 건국 영웅들의 비극적 갈등이 있었다. 갈등 끝에 피살된 건국 총리 루뭄바는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지금도 콩고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의 일생이 서구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콩고엔 그의 이름을 딴 마을이 생겼다. 반면 건국 대통령 카사부부는 동지이자 정적이던 루뭄바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의심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공적은 잊혔다. 이번에 치세케디 콩고 대통령이 역사의 뒤편에서 소환한 인물이 건국 대통령 카사부부다. 그를 루뭄바와 같은 국가 영웅으로 끌어올렸다. 카사부부 이름을 딴 마을도 만든다. 과오도 있었지만 모두 콩고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콩고가 특별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기념일을 이렇게 보낸다. 이념 대립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에 작정하고 과거의 상처를 들쑤셔 집안싸움을 일으키는 막장 나라는 정말 찾기 어렵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불행한 과거를 끝없이 끄집어내는 폴란드 정도가 독립기념일이 돌아오면 자기들끼리 싸운다. 폴란드에 대한 유럽의 대접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폴란드 스스로의 대접보다 박하지 않다.
인도도 8월 15일이 독립기념일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지 2년 후인 1947년 이날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건국했다. 세계적으로 8월 15일은 일제 패망과 2차 대전 종전만이 아니라 피식민지의 해방을 축하하는 날이다. 인도는 식민지 피지배의 기간이 길었고 착취와 폭정의 피해도 컸다. 독립 당시 인도의 건국 지도자들은 식민 시대의 두 가지 핵심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지 깊은 고민을 했다. 영국 제국주의가 이식한 영어와 크리켓이다. 인도 지도자들은 이들을 오히려 국가 통합의 유산으로 계승했다.
'힝글리시(힌디어+잉글리시)'로 불리는 인도식 영어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크리켓을 식민지 잔재로 여기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다. 크리켓 국제대회에서 영국을 누를 때 인도 국민은 환호하고 통합한다. 힝글리시 인구가 잉글리시 인구를 압도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도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면 미국식 영어처럼 힝글리시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식민지 잔재로 다민족·다종교·다언어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인도 통합과 발전의 상징이자 수단으로 진화시켰다. 이래서 인도가 대국(大國)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인도 총리의 독립 70주년 기념 연설을 인상 깊게 들었다. 90분 넘게 이어졌지만 과거를 탓하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자랑과 미래 설계로 대부분을 채웠다. 거창하지도 않았다. 인도 언론은 '1가구 1화장실' 약속을 주요 내용으로 전했다. 올해 8월 15일엔 중국과의 국경분쟁을 의식해 "인도의 주권 존중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을 특정하지 않았다. 여당은 조국의 스와라지(독립) 정신을 찬양했고, 야당은 국경분쟁에서 희생된 인도 장병에게 경의를 표했다.
대한민국은 독립기념일 자랑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2차대전 후 식민 지배에서 해방돼 건국한 나라 중 유일하게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뤘다. 한국 국민은 독립기념일에 과거와 현재를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다. 광복절 자축은 현대사를 성공시킨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다. 이런 국민이 내전과 질병의 역 사로 얼룩진 나라의 국민보다 독립기념일을 훨씬 비루하게 보냈다. 광복회장이란 자가 독립기념일 축사를 저주의 언어로 채웠다. 대통령은 그 저주를 듣고도 침묵했다. 집권당은 그 저주에 박수를 보냈고 동참했다. 국민을 둘로 쪼갰다. 모든 나라의 독립기념일을 다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괴상한 방식으로 독립과 건국을 기념하는 나라일 것이다.
지난 6월 30일은 콩고 독립 60주년이었다. 아프리카 독립기념일이라면 독재자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콩고 정부는 행사를 생략했다. 아낀 비용을 코로나와 반군을 막는 용도로 돌렸다. 대신 이날을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는 기회로 삼았다.
신생 국가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콩고도 독립 직후 건국 영웅들의 비극적 갈등이 있었다. 갈등 끝에 피살된 건국 총리 루뭄바는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지금도 콩고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의 일생이 서구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콩고엔 그의 이름을 딴 마을이 생겼다. 반면 건국 대통령 카사부부는 동지이자 정적이던 루뭄바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의심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공적은 잊혔다. 이번에 치세케디 콩고 대통령이 역사의 뒤편에서 소환한 인물이 건국 대통령 카사부부다. 그를 루뭄바와 같은 국가 영웅으로 끌어올렸다. 카사부부 이름을 딴 마을도 만든다. 과오도 있었지만 모두 콩고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콩고가 특별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기념일을 이렇게 보낸다. 이념 대립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에 작정하고 과거의 상처를 들쑤셔 집안싸움을 일으키는 막장 나라는 정말 찾기 어렵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불행한 과거를 끝없이 끄집어내는 폴란드 정도가 독립기념일이 돌아오면 자기들끼리 싸운다. 폴란드에 대한 유럽의 대접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폴란드 스스로의 대접보다 박하지 않다.
인도도 8월 15일이 독립기념일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지 2년 후인 1947년 이날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건국했다. 세계적으로 8월 15일은 일제 패망과 2차 대전 종전만이 아니라 피식민지의 해방을 축하하는 날이다. 인도는 식민지 피지배의 기간이 길었고 착취와 폭정의 피해도 컸다. 독립 당시 인도의 건국 지도자들은 식민 시대의 두 가지 핵심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지 깊은 고민을 했다. 영국 제국주의가 이식한 영어와 크리켓이다. 인도 지도자들은 이들을 오히려 국가 통합의 유산으로 계승했다.
'힝글리시(힌디어+잉글리시)'로 불리는 인도식 영어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크리켓을 식민지 잔재로 여기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다. 크리켓 국제대회에서 영국을 누를 때 인도 국민은 환호하고 통합한다. 힝글리시 인구가 잉글리시 인구를 압도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도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면 미국식 영어처럼 힝글리시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식민지 잔재로 다민족·다종교·다언어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인도 통합과 발전의 상징이자 수단으로 진화시켰다. 이래서 인도가 대국(大國)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인도 총리의 독립 70주년 기념 연설을 인상 깊게 들었다. 90분 넘게 이어졌지만 과거를 탓하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자랑과 미래 설계로 대부분을 채웠다. 거창하지도 않았다. 인도 언론은 '1가구 1화장실' 약속을 주요 내용으로 전했다. 올해 8월 15일엔 중국과의 국경분쟁을 의식해 "인도의 주권 존중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을 특정하지 않았다. 여당은 조국의 스와라지(독립) 정신을 찬양했고, 야당은 국경분쟁에서 희생된 인도 장병에게 경의를 표했다.
대한민국은 독립기념일 자랑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2차대전 후 식민 지배에서 해방돼 건국한 나라 중 유일하게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뤘다. 한국 국민은 독립기념일에 과거와 현재를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다. 광복절 자축은 현대사를 성공시킨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다. 이런 국민이 내전과 질병의 역 사로 얼룩진 나라의 국민보다 독립기념일을 훨씬 비루하게 보냈다. 광복회장이란 자가 독립기념일 축사를 저주의 언어로 채웠다. 대통령은 그 저주를 듣고도 침묵했다. 집권당은 그 저주에 박수를 보냈고 동참했다. 국민을 둘로 쪼갰다. 모든 나라의 독립기념일을 다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괴상한 방식으로 독립과 건국을 기념하는 나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