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년 전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항저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한다)하라”고 했다. 항저우는 1930년대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거지였다. 그 시절 중국은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일제(日帝)에 쫓기던 임정을 물심양면 도왔다. 시 주석은 그 역사를 언급한 것이다.


시진핑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중국이 임정을 도운 건 맞지만 도와준 주체는 지금의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이 아니라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였다. 시진핑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조차 견강부회하며 우리를 압박했다. 음수사원하라는 시 주석 요구는 “궁지에 몰린 임정을 중국이 도왔는데, 너희는 사드로 뒤통수치냐”는 힐난이었던 셈이다.


중국의 궁극적인 한반도 전략은 한국을 미국에서 떼어내 옛 조선처럼 중국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다. 한국 돌아가는 꼴을 보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여길 것이다. 대한민국 현 집권 세력이 “중국과 동맹을 맺어서 안 될 이유가 뭐냐” “대한민국은 동맹을 선택할 수 있다” 같은 말을 해가며 동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달 초 중국 전승절을 맞아 주한 중국대사관에 축전을 보낸 김원웅 광복회장도 그런 사람이다. 축전에 ‘한국과 중국은 항일 반(反)파시즘 전쟁을 함께 치른 동지’라고 썼다. 동지라니, 어림없는 소리다. 철저한 반공주의자 김구가 이끄는 대한민국 임정은 마오쩌둥과 항일 투쟁을 함께한 적이 없다. 마오와 항일 연합 전선을 편 건 조선의용군이었고 해방 후 북한에 들어가 6·25 남침의 주력이 됐다. 마오 자신도 항일을 명분 삼아 장제스와 국공합작했을 때조차 일본과 싸우는 시늉만 했다. 국민당 군이 일본과 혈투를 벌이는 사이 홍군(紅軍) 세 불리기에 나서 1만도 안 됐던 병력을 90만 대군으로 키웠다. 그 군대가 장제스를 몰아냈고, 6·25가 터지자 압록강을 건넜다. 북한을 도와 대한민국을 한반도 지도에서 지우기 위해서였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한미 동맹은 냉전 동맹”이라 폄훼하며 중국 편에 섰다. 양국 동맹을 고작 냉전 시대 유물 취급했다. 두 나라가 동일한 가치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미 국무부가 이인영 장관 말을 반박하며 그 점을 지적했다. “한미 동맹은 안보 협력을 넘어선다”고 했고, 한미 두 나라는 “자유·민주·인권·법치의 가치를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이 중 어느 것도 전체주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과 공유하지 않는다. 이 나라 집권 세력은 어떻게든 미국을 벗어나 중국에 다가서려 하지만,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 나라와는 동맹은커녕 공존조차 불가능하다.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유린과 민주주의 붕괴 사태가 그 사실을 웅변한다.


시진핑이 시키지 않아도 염치를 아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음수사원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1947년 서윤복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할 여비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자 미 군정청 직원들이 나서서 모금 운동을 폈다. 태평양을 건널 군용기까지 마련해 줬다. 서윤복은 해방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나가 국제대회를 제패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내 승리는 자유로운 몸으로 달릴 기회를 준 미국 덕분이다.” 우리의 음수사원은 이런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음수사원은 개인 윤리를 넘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생존 전략이 된다. 이 나라가 지금 마시는 자유·민주·번영의 물은 어디에서 흘러왔으며, 그 물을 우리 후손도 대대손손 마시게 하려면 어디를 향해 물길을 터야 하는가. 중국은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