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중국 대사를 당장 초치하라," 조선일보, 2020. 10. 30, A38쪽.]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교부가 전·현직 일본 관료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규탄한 공식 논평은 12차례에 이른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냈다. 토요일인 지난 17일엔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잘 하지 않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관련 논평만큼은 두 차례나 리트윗했다.
매년 1월 일본은 외무상이 국회 외교 연설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2월엔 시마네현에서 ‘독도의 날’ 행사를 연다. 그때마다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강력히 항의한다” “부질없는 시도를 중단하라” “행사 폐지를 촉구한다”고 했다. 말로 엄포를 놓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일본 대사를 초치(招致)해 역사 왜곡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 의지를 보여줬다.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 대사는 올해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외교부 청사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이런 외교부의 결기를 중국 앞에서만 볼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3일 항미원조(抗美援朝) 70주년 기념식에서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 침략 확장을 억제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의 남침을 부정하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 있은 지 엿새가 지나도록 외교부는 논평 하나 내지 않았다. 기자들과 야당 의원들 질문에 말로 입장을 밝힌 게 전부다. 그마저도 목적어를 숨기는 간접화법을 구사했다. “한국전쟁 발발 관련 사안은 이미 국제적으로 논쟁이 끝난 문제”라는 식이다. 여당 소속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은 “일방적으로 대한민국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중국의) 시각에 대해선 분명하게 지적해줄 필요가 있다”고 질책했다.
북한의 남침과 이어진 중공군 참전은 6·25전쟁 기간 13만7899명에 이르는 국군 전사자를 냈다. 스물두 나라에서 온 유엔군도 4만명이 전사했다. 이를 두고 중국이 “침략자를 때려눕혔다”고 억지를 부리는데도 침묵하는 건 굴종 외교다. 게다가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인 뜻깊은 해다. 오죽 답답했으면 중국 네티즌들 공격을 받는 방탄소년단(BTS) 구명을 위해 미 국무부 대변인이 나섰을까. 혹시나 시진핑 주석 방한을 의식한 행보라면 ‘소탐대실’이다.
외교부가 침묵하는 사이 중국은 온갖 경로로 ‘6·25는 남침’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시험하고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이번 논란에 대해 “중화 인민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며 “시진핑 주석 연설을 ‘역사적 관점’에서 봐달라”고 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시진핑의 발언이 왜곡됐다는 걸 모르는 우리 국민은 없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을 싱하이밍 대사가 역사 운운하는 건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 왜곡에 대해 단호했던 외교부가 왜 싱하이밍 대사는 초치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