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중국 앞에만 서면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과 호주," 조선일보, 2020. 10. 31, A30쪽.]


한국과 호주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두 나라는 싱가포르식 ‘좋은 통치’에서 북한식 전체주의까지 다양한 통치체제가 섞여 있는 지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 양국 모두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진 강국’이며, 한국은 개발도상국 원조나 평화봉사단 같은 분야에서, 호주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둘 다 올림픽을 개최했고, 국민이 스포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도 흡사하다. 하지만 급부상하는 중국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극적으로 갈린다.


한국과 호주는 반세기 넘도록 미국의 중요한 안보 동반자였다. 6·25전쟁 이후 거의 모든 전쟁에서 미국과 함께 피를 흘렸다. 이처럼 안보 분야에선 여전히 미국이 두 나라의 보증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제 분야에선 중국이 주요 파트너로 성장했다. 지난 2004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두 나라의 경제 교역 규모 1위 나라가 됐다. 중국은 무역 의존성을 무기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한국이 사드 배치를 추진하자 가혹하게 경제 보복을 단행했고, 호주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주장하자 호주산 밀에 80% 관세를 매기고 쇠고기 수입을 금지시켰다.


중국이 이런 행동을 취할 때 경제적 이해관계와 동맹, 위협 등이 비슷한 두 나라의 대응도 유사할 것 같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 호주는 중국 주도권에 반발했지만 한국은 순응적으로 행동했다. 미·중 갈등이 극도로 깊어지는 시대로 접어들수록 ‘양다리 걸치기’는 점점 더 설 자리가 없다. 미국과 중국은 다른 나라들에 누구 편에 설 것인지 확실하게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난 7년간 미·중이 대립했던 10가지 핵심 쟁점을 분석해보면 한국은 6개에서 중국 편을 들었다. 보수와 진보 정권 다 마찬가지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고,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았을 때 중국 눈치를 보느라 지지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


물론 한국이 그런다고 미국이 보복하진 않는다. 동맹들이라도 항상 미국 편을 들진 않는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호주는 너무 다르다. 지난 7년간 ‘양자택일’ 순간에 호주는 8번 미국 편을 들었다. 호주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에 반대했다. 호주는 미국보다 먼저 중국 화웨이를 5G망 구축 사업에서 배제했다. 한국이 LG유플러스의 화웨이 기술·부품 사용에 대해 민간 차원 문제라면서 회피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도 호주는 중국을 비난하면서 미국·영국·캐나다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한국은 너무 말을 아낀 나머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만 해도 즉각 반응을 내곤 했다. 호주나 한국이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호주가 미·중이 마찰을 빚는 10개 쟁점에서 8개 미국 편을 든 것에 대해 호주인들은 주권 국가로서 국익을 고려해 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개 중 6개에 대해 중국 편을 든 것도 그게 한국에 최선이라고 계산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대륙의 이웃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고 있는 건 국민 정서와는 달라 보인다. 지난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한국 내 전문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미래 미·중 정책 설계’를 보면 미국보다 중국과 협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도 17%에 그쳤다. 10월 초 나온 미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시진핑이 세계 문제에 대해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83% 한국인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전년보다 9%포인트 증가한 것인데, 이는 호주나 미국인들이 보인 반응보다 더 부정적인 것이었다. 중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거나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진 비율도 24% 정도였다. CSIS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민과 시각 차이가 너무 컸다. 한국 내 경제·국가안보 전문가 중 76%가 화웨이를 5G 네트워크에서 차단하는 게 맞는다고 했고, 코로나19에 대해서 중국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응답자 중 79%로 호주 국민(73%)보다 더 단호했다. 호주 정책은 국민의 정서와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대변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문재인 정부와 국민 생각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