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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 모독하는 집권층의 위선

5·18 역사 왜곡 처벌법은 표현의 자유와 이성적 소통이란 5·18 정신을 정면으로 파괴
강압적 신성화는 시대착오일 뿐


[양승태, "5·18 정신 모독하는 집권층의 위선," 조선일보, 2020. 11.14, A27쪽.]

현 집권층을 향한 ‘나라가 너희 것이냐’라는 대중적 비아냥거림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득표로 차지한 국회 다수 의석이 국정 전횡(專橫)을 넘어 폭정의 면허증이라도 된다는 듯 국가 행정 체계에 이어 국헌 문란까지 기도하고 있다. ‘5·18 신성화’ 입법(5·18 역사 왜곡 처벌법)이 그것이다. 3·1운동이나 4·19의거와 차별적으로 광주 민주 항쟁에 관해서만은 어떤 비난은 물론 학문적 비판마저 금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5·18 정신은 명확하다. 국민적 합의 과정 없이 반대 정파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헌정 파괴 방식으로 정권을 찬탈한 행위에 대한 시민적 저항이다. 그것은 곧 모든 정치적 분쟁은 표현의 자유 속에서 정파 간 이성적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헌정 이념 수호 의지의 표현이다. 5·18 정신을 계승한다는 현 집권층이 그것을 정면으로 파괴하려는 것이다.

‘5·18 신성화’가 이뤄지려면 최소한 두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사건 실체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통해 관련된 의혹 모두가 해소되어야 하고, 진상 규명을 근거로 그 역사적 의의가 외세에 대한 거족적 저항인 3·1운동이나 국기 문란의 선거 부정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인 4·19의거보다 상위에 있다는 점을 국민 대다수가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절차가 없는 ‘5·18 신성화’란 ‘5·18 정략’일 뿐이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강압적 신성화 정략은 중세 신정 체제나 20세기 초 전체주의에서나 가능하다. 권력 집단이 피치자들의 정치 의식을 철저히 세뇌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회적 소통 수단이 무한하게 열려 있는 이 시대에 그런 정략은 시대착오적이고, 무엇보다 국가 발전 저해 행위이다.

5·18 정신이 대변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 체제의 핵심은 사고의 개방성에 있다. 모든 문제를 자유로운 탐색, 철저한 사실 규명, 진지한 토론, 공개적 논박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책의 합리성이 증대되고, 국민의 정신 능력 및 창의성이 함양되며, 역사적 사건의 의미나 가치가 자연스레 국민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집권층이 혐오하는 ‘5·18 망언’이 유포된다면 그런 과정을 통해 그 부당성과 허구성을 입증하면 된다. 망언은 입법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통렬한 비판에 의한 공개적 망신으로 퇴치된다.


현 집권층은 과거 온갖 저급한 언행도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내세워 줄기차게 옹호한 바 있다. 굳게 신봉한다는 원칙을 갑자기 저버리는 인간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유형에 속한다. 그 원칙 자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지적(知的)으로 허망한 인간, 그 원칙이란 것이 대중적 인기 등 범속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겉치레일 뿐인 진정성 없는 인간, 타인의 시선 밖에서는 그 원칙과 다르게 행동하는 위선적 인간이다. 현 집권층이 그런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면, 5·18 정신을 모독하는 5·18 정략은 철회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념을 파당적 관점이나 이해 타산에 따라 제멋대로 해석하고 ‘씩씩하게’ 행동하는 추종자들을 보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Ich bin kein Marxist)”라고 선언한 바 있다. 민주화 투사들이라는 현 집권층 인사들은 언행의 모순이 유달리 많았는데, 5·18 정략으로 스스로 표명한 정치적 정체성까지 부정하려 한다. 민주주의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환생한다면 그들을 보고 ‘나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단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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