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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단 보고 탈북 결심했다”

[김명성, “전단 보고 탈북 결심했다.”  조선일보, 2020. 12. 18, A34쪽.]


“탈북자들조차 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여당이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다음 날(15일) 통일부가 이 법에 대한 설명 자료라며 배포한 내용 중 일부다. 북한 출신인 기자는 두 눈을 의심했다. 북에 있을 때 대북 전단과 함께 날아온 라디오를 통해 외부 세계 소식을 접하고 탈북까지 결심한 당사자로서 통일부 주장이 거짓말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민간 대북 전단의 ‘원조’로 불리는 이민복 대북풍선단장도 “내가 전단을 날리는 것은 북에서 전단을 보고 탈북했기 때문”이라고 누차 증언해왔다. 대다수 탈북자들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태영호 의원도 “남북이 손잡고 북한 주민의 눈과 귀, 오감을 이중, 삼중으로 차단했다”고 비판했다.

통일부 설명 자료엔 기존 상식에 반하는 억지가 수두룩했다. “전단 살포가 북한 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그 근거를 살펴봤더니 “(전단 살포가) 오히려 북한 당국의 사회 통제 강화로 북측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키는 역효과만 야기한다”고 써놓았다. 이 논리대로라면 북한 당국의 통제 강화를 유발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해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이 요즘 단속에 혈안인 K팝이나 한류 드라마 유입도 통제 강화를 유발할 수 있으니 제작을 자제해달라고 할 것인가.

통일부는 이 법이 ‘김여정 하명법’이란 지적에 대해서도 “왜곡”이라고 발끈했다. 지난 6월 4일 “(전단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김여정의 담화 때문에 급조한 게 아니라 2008년 18대 국회 때부터 추진한 결과란 주장이다. 12년 숙성 끝에 결실을 봤다는 취지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폭언과 저주로 점철된 김여정의 담화가 6월 4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을 때 당혹해하던 통일부 관리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담화 4시간여 만에 통일부 대변인은 예정에도 없던 브리핑을 자청해 대북전단금지법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여당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백해무익한 삐라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거들었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통과된 대북전단금지법이다. 12년 숙성을 거친 게 아니라, 반대 여론을 의식해 12년간 주저하던 법을 김여정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제정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그래서 ‘김여정 하명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통일부는 ‘전단금지법에 찬성하는 접경 지역 주민들의 입장문’이란 자료도 수시로 배포하고 있다. 이 법이 ‘접경 지역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한 조치’란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다. 물론 과거 일부 단체가 풍향도 맞지 않는 날 공개적으로 전단을 날려 북한을 자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경찰관직무집행법 등 기존 법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전단 살포를 원천 금지해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할 일은 아니다. 이 법의 최대 피해자는 외부 소식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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