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원웅 광복회장은 1945년 해방 정국에서 미군이 점령군이었고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 교수 등 일부 지식인은 미국의 공식 포고령에서 ‘점령(occupy)’이라는 단어를 썼으니 그저 ‘팩트’를 말했을 뿐이라며 편을 들었다.
분명한 사실부터 이야기해보자. 미군이 스스로를 ‘점령군’이라 칭한 것은 공문서의 어휘다. 반면 소련군이 스스로를 ‘해방자’라 부른 건 선전용 문서에서 나온 말이다. 미군의 표현이 증명사진이라면 소련군의 표현은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해 필터를 잔뜩 먹인 셀카와 마찬가지다. 소련과 북한의 ‘쌩얼’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이들은 이승만이 단독 정부를 수립하지 않았거나, 혹은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과 유엔군이 패배하는 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면, 우리의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거라는 망상을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낡은 역사책에 기반한 일종의 시간 여행 판타지에 푹 빠져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리하여 진정한 민족국가를 세울 수만 있다면!
1945년, 남과 북의 조건은 거의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미군에게 ‘점령’당한 반면, 북한은 소련을 통해 ‘해방’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76년이 흐른 지금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쌍둥이 실험을 보는 것만 같다. 미국이라는 로켓을 타고 넓은 우주로 나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반면, 소련을 통해 ‘해방’되고 중국의 품에 안긴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독재 국가로 주저앉아버렸다. 우리는 미국에 ‘점령’되면서 자유를 얻었고, 북한 주민들은 소련을 통해 ‘해방’된 후 압제에 시달린다. 누가 점령군이고 누가 해방자인가.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처럼 묘사한다. 그들 소원대로 미군이 ‘점령’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누리는 그 모든 것은 존재할 수도 없었다. 전형적인 타임 패러독스다. 다 큰 어른들이 그들만의 역사 판타지 속에 허우적거리며 ‘백 투 더 조선’을 외치고 있다. 사상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본인들이 낡고 후지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를 바란다. 국민은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백 투 더 퓨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