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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엔 한마디 못하면서 “진실” 대사만 외는 사람들

[사설: "증거엔 한마디 못하면서 “진실” 대사만 외는 사람들" 조선일보, 2021. 73 28, A39쪽.]

대통령 선거 여론 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진실이 바뀔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린다”며 “외면당한 진실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에도 그는 ‘진실’이란 말을 반복했다. 지지자들이 “김경수는 무죄”라고 외쳤다.

6년 전 한명숙 전 총리의 수감 장면을 다시 보는 듯했다. 한 전 총리는 구치소 앞에서 “사법 정의가 이 땅에서 죽었기 때문에 상복을 입었다”며 “나는 결백하다”고 했다. 오른손엔 성경, 왼손엔 백합꽃을 들었다. 동료 국회의원들이 곁에서 눈물을 흘렸고 지지자들은 “한명숙은 무죄”라고 외쳤다. 그는 ‘임을 위

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구치소에 들어갔다. 대법원의 유죄 판결 직후엔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선 무죄”라고도 했다. 지난달 출간한 자서전 ‘한명숙의 진실’에서 그는 다시 결백을 주장했다.

법원은 증거를 토대로 진실에 다가가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런데 김경수나 한명숙씨는 법원에 제출되고 사실로 인정된 유죄의 증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김 전 지사와 일명 ‘드루킹’ 일당이 주고받은 수많은 비밀 메신저 기록을 증거로 인정해 그가 여론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개발 계획과 댓글 조작에 가담했다고 판결했다. 드루킹 일당이 “김 지사에게 킹크랩 기능을 보고했다”며 주고받은 문서도 증거로 인정됐다. 김씨는 대법원 판결 후 이 팩트들을 반박하지는 못하면서 “진실”만 말한다. 마치 연극 대사를 읊는 것 같다. 한 전 총리는 건설업자의 1억원 수표가 동생의 전세 자금으로 쓰인 결정적인 증거를 명확하게 해명하지 않고 있다. 여권에 호의적인 법조인들조차 이 증거들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진실” “결백” 운운한다. 자신의 범죄를 정치로 덮으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하루 300번 법정 증언을 거부한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법원에선 침묵하다가 회고록을 내고 “저주의 굿판에 온 가족이 희생됐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1심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땐 증거에 대한 반박은 없이 “피할 수 없는 운명” “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모양”이라며 감정에 호소했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 펀드 투자, 뇌물 수수, 감찰 무마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울산 선거 공작, 불법 출금 사건에도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정권 사람들은 중대 범죄조차 현란한 수식어와 말의 성찬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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