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의 ‘영어 금지’
2021.09.23 14:26
중국의 ‘영어 금지’
[안용현, "중국의 ‘영어 금지’" 조선일보, 2021. 9. 14, A38쪽.]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처음 시작한 분야는 경제가 아니었다. 교육이었다. 청소부 등으로 쫓겨간 학자들을 대거 복권했고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던 대학 입시도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중국 대학엔 서구 사상과 기술을 전하는 영문 서적이 넘쳐났다. 1978년 베이징대에 입학한 리커창 총리는 손으로 쓴 영어 단어장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다녔다고 한다. 1982년 중국에서 TV를 보유한 1000만 가구 대부분이 BBC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했다. 학문 개방과 외국어 열풍이 외자 유치보다 먼저였다.
▶2013년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서 “영어 학습 비중이 너무 높아 학생들이 중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한 미술대학은 ‘영어를 못하면 그림 재능이 있어도 불합격’이란 공고문을 붙이기도 했다. ‘외국 물’ 먹은 중국인들이 사적 모임에선 영어를 썼다. 고관대작의 자녀는 미·영으로 유학을 갔다. 시진핑 딸도 하버드에서 공부했다. 영어를 해야 돈도 벌었다. 그런데 빈곤 가정 출신이나 문혁을 겪은 중·노년층에선 알파벳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어가 중국 사회 격차와 불만의 원인 중 하나로 부상했다.
▶지난달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선언한 시진핑의 중국은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천문학적 돈을 뜯어내고 있다. 공산당에 찍힌 알리바바가 내놓기로 한 ‘기부금’만 1000억위안(약 18조원)이다. 문혁 시기 홍위병의 ‘부자 때리기’가 떠오른다. 공산당은 청소년 게임 봉쇄, 연예인 팬클럽 폐쇄 같은 개인 자유 통제도 서슴지 않는다.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제하기까지 한다. 지금 ‘제2의 문혁이라도 났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하이 교육 당국이 지역 초등학교의 영어 시험을 막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중국 초·중학교에선 해외 교과서 사용이 불허됐다. 영어 사교육도 사실상 금지됐다. 대입 시험에서 영어를 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학 관계자는 NYT에 “저널리즘이나 헌법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과목일수록 영어 원서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영어 자리는 중공 이념 교육이 대신하고 있다. 서구의 자유와 민주 사상을 직접 체득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5년 전만 해도 “문혁이 (중국을) 세계와 단절시켜 폐쇄된 환경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본인이 문혁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 중국을 닫힌 나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내년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위한 통제 조치다.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